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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칼럼/일반

시련이 라리가를 키운다.

* 이 글은 2014-15 프리메라리가 32R가 끝난 시점에서 쓰여진 글입니다.

애초에 기고하기 위해 썼던 글이라 정해진 분량(A4 2장)에 맞추기 위해 내용이 간추려 작성된 글임을 미리 알립니다.

때문에 부족한 근거와 비약적인 내용이 있습니다. 그 점 유의해서 가볍게 읽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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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 했지만 역시나. 라리가 32R가 끝난 현재, 지난 시즌 우승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가 7점 차로 선두권과 간격을 좁히지 못하면서 결국 이번 시즌의 패권은 다시 한 번 신계의 대결로 압축되었다. 아직 아틀레티코 마드리드가 역전할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지난 시즌만 못하다는 평가와 상대하는 1,2위 팀의 최근 기세를 생각하면 힘에 부쳐 보이는 게 사실이다. 늘 그래왔듯 이번 우승 레이스도 팀 위의 팀, ‘신계’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의 대결이 되었다. 그들만의 리그를 펼치는 두 팀과 라리가는 이대로 괜찮을까.

 

먼저, 일명 ‘신계’와 ‘인간계’로 구분되는 라리가의 양극화는 언제부터였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을 수 있겠지만, 보통은 플로렌티노 페레즈 회장이 레알 마드리드에 다시 부임한 2009-10시즌을 꼽는다. 바로 그 전해, 펩 과르디올라를 앞세워 전무후무한 6관왕을 기록한 라이벌 바르셀로나에 자극받은 페레즈 회장이 ‘갈락티코 2기’를 천명했다. 그해 세계 최고의 이적료로 영입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리오넬 메시의 바르셀로나에 맞서는 타도 바르셀로나의 핵심이었다. 물론 바르셀로나도 이에 질세라 즐라탄을 영입했다. 강한 힘은 더 강한 힘을 부르는 법. 서로가 서로를 의식하며 몸집을 불려나가던 두 거인들의 싸움은 ‘스페셜 원’ 무리뉴가 레알 마드리드에 부임하면서 정점에 달하였다. 그렇게 서로만 바라보며 미친 듯이 싸운 결과, 어느새 사람들은 두 팀을 ‘신계’라 부르고 있었고, 펩과 무리뉴가 떠난 이후에도 이번 시즌의 엔리케와 안첼로티의 대결까지. 신계 전쟁은 현재진행형이다.

 

신계와 인간계는 순위표의 승점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전까지는 2위와 3위의 승점 차가 생각보다 크지 않았지만 2009-10시즌 종료 후 바르셀로나와 레알의 승점은 무려 99점과 96점이었고, 3위 발렌시아의 승점은 71점에 불과했다. 2009년 이후로 두 팀의 승점과 다른 팀들의 차이는 압도적으로 벌어졌다. 혹자는 라리가의 수준이 낮아져서 그런 게 아니냐고 물을 수 있겠지만, 라리가는 현재 UEFA랭킹1위 리그로서 몇 년째 압도적인 1위를 유지 중이다. 그렇다. 양극화로 비판받는 라리가지만,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리그 랭킹1위란 사실이다. 

 

렇다면 라리가가 UEFA랭킹1위에 등극한 시점이 언제일까. 라리가가 EPL을 제치고 1위에 오른 건 2013년이다. 하지만 그 이전 점수가 더 중요하다. 왜냐하면 UEFA랭킹은 최근 5년간 점수의 합산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보다 앞선 2008/09시즌부터의 성적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2008/09시즌은 EPL보다 적은 점수를 쌓았지만, 2010년부터는 EPL을 웃도는 점수를 벌기 시작했다. 가시적인 성과만 비교하더라도 2009년부터 2013년까지 라리가 팀이 들어 올린 유럽대항전 트로피는 4개(챔피언스리그 2회, 유로파리그 2회)로 다른 리그를 압도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라리가가 당시 1위였던 EPL을 뛰어넘는 영향력을 발휘한 시기(2010년)와 리그 내 양극화가 시작된 시기(2009년)가 1년의 시간을 두고 연달아 일어난 것이다. 물론 라리가의 발전은 여러 가지 원인이 복합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므로 리그 랭킹의 상승과 양극화를 완전히 조응한다고 보긴 힘들지만, 시기적으로 이들 사이에는 어느 정도 연관성이 있다고 볼 수 있다. 2009년 바르셀로나의 6관왕 등극이 의도하진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라이벌 레알 마드리드의 발전을 자극했듯이 두 신계 팀의 높은 수준이 역설적으로 다른 팀들의 분전과 질적 상승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지난 시즌 레알과 바르셀로나를 제치고 우승을 차지하며, 양강과 어깨를 나란히 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 유로파 깡패로 불리며 최강팀으로 거듭난 세비야가 대표적인 사례다. 아무리 상대가 강한들, 자주 부딪히게 되면 결국 내성이 생긴다. 즉, 나머지 인간계 팀들에게 같은 리그 내 존재하는 두 신계 팀은 훌륭한 교본이자 자극제인 셈이다.



2013년을 시작으로 몇 년째 독주중인 프리메라리가. 다른 리그와의 점수차는 해가 갈수록 커졌다. 

 


하지만 리그의 발전과 별개로 라리가의 양극화가 비판받는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재미’다. 두 신계 팀과 인간계의 전력 차가 커 리그 경쟁에 긴장감이 덜할뿐더러 우승 경쟁 팀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재미가 없다는 비판이다. 이와 반대되는 예로 꼽히는 것은 프리미어리그(이하 EPL)다. EPL은 1위부터 상위권 팀 간의 격차가 적고 우승 경쟁도 치열하기 때문에 더 재미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는 옳지 않다. 왜냐하면 우리가 무언가를 보고 느끼는 '재미'는 개인의 주관적인 가치로서 사람마다 그 근거가 다르기 때문이다. 경기의 수준이나 선수의 테크닉에 대해선 뛰어나다, 못하다 등의 객관적인 평가가 어느 정도 가능하지만 '재미'는 하나의 기준으로 논할 수 없다. 누군가에겐 지루한 수비축구가, 누군가에겐 더없이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마찬가지로 비록 신계 팀뿐 아니라, 그 아래 중하위권 팀들까지도 수준 높은 경기력을 보여주는 '뛰어난 경기력 자체'에서 라리가의 재미를 느낄 수도 있는 것이다. 또한, 우승 레이스가 가장 비중 있는 스토리라인인 것은 맞지만, 우승 레이스만 놓고 리그의 재미를 판단하는 것은 편협한 시각이다. 우승 경쟁 외에도 유럽대항전 진출을 위한 팀들의 경쟁과 1부 리그 잔류를 위해 분전하는 팀들의 치열한 스토리도 동시에 존재한다.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가장 재미있는 리그로 간주되는 EPL이 올 시즌 챔피언스리그와 유로파리그 16강에서 모두 전멸했다는 점이다. 최근 몇 년간 첼시를 제외하면 EPL 팀들은 유럽 무대에서 뚜렷한 성과를 얻지 못했다. 리그 내 경쟁이 치열하다곤 하나, 유럽무대에서 몇 년간 하향세를 보였던 게 EPL이다. 과연 상위권 팀들의 전체적인 하향평준화에 기인한 '치열함'과 거기서 발생하는 '재미'가 장기적으로 리그에 옳은 방향일 지는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물론 몇 년간 같은 리그 내 팀들의 전력이 신계와 인간계로 이렇게나 구분되는 것은 분명, 흔한 일은 아니다. 그렇지만, 라리가의 극단적인 양극화를 지나치게 확대해서 걱정할 필요도 없다. 애초에 라리가는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가 패권을 다투던 곳이었다. 이는 라리가에 국한된 얘기가 아니다. 세리에A는 역사적으로 유벤투스와 양 밀란 세 팀들의 경합으로 압축할 수 있고, 분데스리가와 프리미어리그(92년 출범 이후)는 아예 바이에른 뮌헨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영토였다. 즉, 라리가의 극단적인 양극화가 갑자기 불거진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중계권 배분 문제나 심판들과 관련된 문제(지나친 권위와 잦은 오심 논란)가 더 시급하고 중요하다. 지금의 라리가 양극화는 분명 앞으로도 계속 안고 가야 할 숙제지만, 일부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만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위기는 아니라 생각한다. 위에서 언급했듯 긍정적인 면이 분명히 존재하므로 이를 활용하는 것이 절실하다. 지켜보는 팬들에게도 지나친 비판보다는 두 신계 팀의 화려함과, 신들에 맞서기 위한 인간계의 노력을 즐기며 관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니체가 말했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강하게 만든다.("What does not destory me, makes me stronger")"고. 결국, 시련은 인간을 강하게 만들 뿐이다. 타도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를 위한 나머지 팀들의 노력으로 라리가의 수준은 더 높아질 수 있고, 그것은 멀리 내다봤을 때, 라리가의 발전으로 이어질 것이다. 



신계를 무너뜨린 디에고 시메오네의 역사는 현재 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