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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유벤투스와 밀란의 맞대결은 양 팀의 이름값을 제외하더라도, 여러 가지 볼거리로 가득찼던 매치업이었다. 양 팀 모두 아직 시즌 극 초반이긴 하지만, 2전 2승으로 1위를 달리고 있다. 유벤투스는 별다른 전력 누수 없이, 여전히 강력한 디펜딩 챔피언의 위용을 갖추고 있었고, 반면에 밀란은 '잃어버린 과거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 젊은 감독, 인자기와 함께 새로운 항해를 막 시작한 '패기 있는 도전자'의 입장이었다. 그리고 이 날, 또 흥미로웠던 부분은 양 팀의 감독인 알레그리와 인자기의 사제 간 첫 공식경기 맞대결이라는 점이다. 사실 알레그리와 인자기의 스토리는 몇 시즌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알레그리 부임 이후, 인자기는 그의 플랜에서 완전히 제외됐고, 심지어 챔피언스리그 명단에도 오르지 못하는 굴욕을 겪어야 했다. 라울이 경신하기 전까지, 유럽대항전 최다골 기록의 소유자였던 인자기에게 밀란에서의 마지막 2년은 다소 초라한 퇴장이었다. 결국 자의반, 타의 반으로 2011/12시즌 38R, 말그대로 인자기스러운 골과 함께 은퇴해야 했고, 지금의 감독 자리까지 올라왔다. 생각보다 빨리 찾아온 설욕의 기회. 밀란과 유벤투스의 이번 맞대결은 인자기 대 알레그리라는 새로운 매치업만으로도 관심을 모으기에 충분했다.
"알레그리와 인자기 사이에 문제가 있다는 건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이다. 그 둘의 사이가 본격적으로 틀어지게 된 것은 챔피언스 리그 명단에서 제외됐을 때부터다. " - 암브로시니 (SKY와의 인터뷰에서)
전반전
양 팀 모두 크고 작은 선발 라인업의 변화는 있었지만, 지난 경기와 동일한 포메이션과 시스템으로 경기에 임했다. 몸상태가 온전치 못한 토레스와 파찌니 대신 인자기 감독은 파르마전과 마찬가지로 메네즈를 중앙에 위치한 쓰리톱을 선발로 세웠다. 다만 밀란 입장에선 부상에서 회복한 엘 샤라위가 왼쪽 측면에 복귀했다는 것이 긍정적인 부분이었다. 물론 지난 라운드와 똑같은 4-3-3일지라도, 밀란의 진형은 실상은 4-5-1 (극단적으로 보자면 4-6-0에 가까운)의 형태로 파르마전보다 더 수비에 무게를 두는 경기 운영을 준비했다.
기존 유벤투스 선수들에게 익숙한 3-5-2를 활용하고 있는 알레그리는 밀란 원정임에도 불구하고, 3-5-2를 공격적으로 활용했다. 양 윙백들의 위치에 따라 자칫 지나치게 수비적으로 운영될 수 있지만, 오히려 양 측면의 아사모아와 리히슈타이너를 밀란의 박스 근처까지 전진시키면서 측면에서의 우위를 점하려고 노력했다. 반면, 밀란은 수비적으로 박스근처까지 내려앉았고 왕성한 활동력의 문타리와 폴리를 중원에 배치해 유벤투스의 막강한 미드필더들과의 싸움을 준비했다. 밀란은 전형적인 공격수가 없는 라인업으로 구성했고 실제로 메네즈와 엘 샤라위, 혼다는 거의 동일선상을 유지했고 발이 빠른 메네즈와 샤라위는 중앙과 왼쪽을 서로 스위칭하면서 수비는 물론, 역습까지 도맡았다.
유벤투스에서는 게임을 조립하는 피를로와, 공수에 있어 팀의 밸런스를 잡아주는 비달이 빠지면서, 중원에서의 패스 시도가 줄어들었고, 대신 좀 더 다이렉트로 박스근처까지 연결을 시도하는 빈도수가 증가했다. 따라서 최후방에서 빌드업을 맡아하던 보누치와 본인이 뛰던 위치보다 조금 더 내려온 마르키시오에 의해 중앙을 생략하고 다이렉트로 박스 근처에서 자리잡고 있던 요렌테와 테베즈에게 다이렉트로 연결하는 공격이 전반전 유벤투스의 가장 위협적인 루트였다. 이와 같은 공격이 유효할 수 있었던 이유는 양 측면의 아사모아와 리히슈타이너가 적극적으로 와이드하게 전진했기 때문이다. 이 두 명의 윙백들과 더불어 좌측에서 주로 활동했던 포그바와 측면과 중앙을 오가며 '짭비달'의 노릇을 톡톡히 해낸 페레이라의 존재 때문에 결국 밀란의 중앙요원들인 문타리와 폴리는 측면의 풀백들을 지원하러 움직일 수 밖에 없었고, 결국 이는 유벤투스의 중원을 생략한 다이렉트성 플레이의 성공률이 올라가는 상황까지 이어졌다.
인자기의 의도
현재 밀란의 밀란의 미드필더 중엔 소위 '볼을 찰 줄 아는' 미드필더가 없다. (볼을 찰 것으로 기대했던 혼다는 90분동안 측면을 오르락 내리락하면서 그동안 숨겨왔던 본인의 체력과 침투능력을 선보이고 있다.) 그나마 유일했던 몬톨리보는 부상으로 빠져 있다. 결국 이러한 구성을 고려했을 때, 팀의 빌드업을 3선 미드필더들에게 맡긴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 빌드업의 불안정은 곧 수비라인의 불안정으로 이어지고 그것은 심각한 실점위기를 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자기는 두 가지 방법을 생각했다. 첫째, 중앙을 생략하고 오히려 진영을 매우 넓게 유지하여 측면으로 볼을 전개하는 것이다. 이 경우 팀의 간격이 넓어져 자칫 실수라도 발생하면, 심각한 위기로 연결되지만 성공만 한다면 중원을 거쳐서 전개되는 것보다 더 빠르게 역습을 시도할 수 있다. 센터백과 데 용에 의해 시작된 밀란의 빌드업은 측면으로 넓게 위치한 풀백들에게 연결되고, 이는 문타리/폴리의 좌우 중앙 미드필더들과 하프라인까지 내려온 샤라위/혼다의 측면 공격수들과의 빠른 패스 플레이에 의해 전개 된다. 4-3-3이 다른 포메이션에 비해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장점인 측면에서 삼각형(카테나) 만들기가 쉽다는 점을 이용한 것이다.
4-3-3하면 가장 많이 봤을 그림. 인자기의 의도대로라면, 이렇게 굴러갔었어야 하지만.
그렇지만 결국 인자기의 첫번째 방법은 의도대로 잘 굴러가지 않았다. 측면의 선수들과 계속해서 삼각형을 만들어 줘야 될 중앙의 미드필더들의 위치선정이 계속 뒤죽박죽이었기 때문이다. 문타리는 동료 선수들과의 포지셔닝에 있어 계속 문제를 보였고, 지나치게 전진한다던지 패스전개의 방향이나 타이밍에 있어서 매끄럽지 못했다. 밀란의 공격은 주로 메네즈와 엘 샤라위가 움직이던 좌측면을 통해 전개됐기 때문에 문타리의 역할은 중요했지만, 문타리는 이 점에 있어서 필드 내 영향력이 미미했다. 따라서 측면으로 볼이 가더라도, 결국 상대의 압박을 이겨내지 못하고 확률이 희박한 롱 볼이나 다이렉트로 전방연결을 시도했고 이는 볼의 소유권을 쉽게 잃어버리는건 물론이고, 역습의 기회도 만들어내지 못했다. 그렇다면 남은 밀란의 빌드업 방법은 하나다. 개인 능력에 의한 전진. 엘 샤라위와 메네즈(주로 메네즈)와 같은 상대 수비수들과의 스피드 경합에 있어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선수들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이다. 밀란의 진영은 결국 하프라인 아래로 많이 내려앉아 있었기에 이들이 하프라인 부근에서 볼을 받는 상황까지는 쉽게 만들어졌지만, 그만큼 역습의 속도와 날카로움도 덜할 수 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이러한 방식은 순전히 개인에 의한 것이므로 정형화된 패턴없이 상대를 당황시킬만한 '의외성'은 존재하지만 결국 패스를 이용한 팀 전체의 빌드업과 비교했을 시, 상대에게 충분한 시간을 허용한다는 점이나 선수의 기복에 따라 그 성공률이 크게 움직인다는 단점이 있다. 또, 직접 볼을 전진시킬 수 있는 선수가 밀란엔 메네즈가 유일하기에, 상대하는 유벤투스 입장에서도 쉽게 대비할 수 있다는게 문제였다. (알다시피 샤라위는 자기 진영에서부터 직접 볼을 전진하는 플레이에 있어선 한계가 있다.)
유벤투스 역시 이러한 부분을 모르지 않았기에 초반부터 밀란의 박스 부근에서의 적극적인 압박이 이루어졌다. 요렌테는 중앙과 우측으로 움직이면서 두 센터백을 압박했고, 테베즈는 종적으로 움직이면서 미드필더들과 협력했다. 페레이라와 포그바는 측면으로 움직여서 밀란의 측면 수비수들과 미드필더들의 빌드업을 방해했는데, 이러한 움직임에서 이들의 압박을 이겨내지 못한 밀란의 선수들은 결국 방향잃은 패스를 남발하기 일쑤였다.
인자기가 준비한 두 가지 빌드업은 그렇게 효과적이었다고 볼 순 없었지만, 수비에 있어서 준비한 전략은 전반전 결과만 놓고 본다면 성공적이었다. 수비시에 있어 데 용의 움직임에 변화를 준 전략은 (완벽하게 유벤투스의 공격을 막진 못했고, 여러차례 위기를 겪긴 했지만) 어찌됐든 전반전을 0-0으로 마치는데 큰 공을 세웠다. 데 용은 의도적으로 평소보다 더 박스 근처에서만 움직였고, 주로 이러한 움직임은 박스 아래까지 내려오는 테베즈의 활동반경과 많이 부딪혔고 직간접적으로 유벤투스의 전방으로 향하는 다이렉트성 패스를 끊기 위함이었다. 공격형 미드필더가 따로 존재하지 않는 유벤투스의 라인업을 고려할 때, 이러한 데 용의 포지셔닝은 테베즈의 움직임을 제한하기 위해 테베즈에게 연결되는 유벤투스의 패스줄기를 차단하려는 시도였다. 물론 그렇다고 유벤투스의 공격이 비효율적으로 움직이진 않았다. 그 이유는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문타리와 폴리가 유벤투스의 측면 선수들에 의해 벌려졌기 때문에 중앙엔 데 용 혼자 수적열세에 놓이는 상황이 자주 연출되었고, 데 용이 평소보다 더 내려갔음에도 많은 공간을 허용했다. 그럼에도 실점하지 않은 것은 데 용과 좋은 간격을 유지하며 유벤투스 공격수들의 박스 진입을 차단했던 두 센터백들의 좋은 수비 덕분이다.
지난 두 라운드와 비교했을 때, 데 용의 활동반경은 극히 박스 앞으로 제한적이었고, 이는 박스 앞까지 내려와 움직이는 테베즈와 그런 테베즈에게 다이렉트로 연결되는 유벤투스의 패스를 제어하기 위한 인자기의 의도적인 노림수였다.
"자파타와 라미는 요렌테와 테베즈같은 뛰어난 선수들을 상대로 좋은 모습을 보였다. 데 용은 포백의 방패역할을 잘 수행했다."
- 인자기, AC밀란 감독
"데 용은 거의 테베즈를 맨마킹하듯 움직였다. 그래서 난 테베즈에게 페레이라가 침투할 수 있도록 후반전엔 좀 더 횡적인 움직임을 가져가라고 지시했다. 우린 데 용을 피해 그 뒷공간을 노렸다."
- 알레그리, 유벤투스 감독
마르키시오
축구는 웬만한 강팀이라도 90분동안 경기를 똑같이 지배하기란 힘들다. 왜냐하면 축구는 '턴 제'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움직이는 '흐름'을 잡아내는 싸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90분동안 돋보이진 않지만 팀의 윤활유로서, 패스의 리듬을 살려줄 수 있고 볼의 흐름을 미묘하게 조절하는 선수의 중요성은 매우 크다고 볼 수 있다. 이 경기에서 그러한 역할을 맡았던 선수가 바로 유벤투스의 마르키시오다. (밀란은 공만 잡으면 냅다 차고 뛰는 속공식의 흐름이 많아서 사실 필요하지도 않았고, 설사 필요했더라도 필드에서 주도적으로 볼을 쥐고 조절할 수 있는 역량의 선수는 이 날 아무도 없었다.)
사실 앞 선의 포그바와 페레이라가 전방으로 전진해서 플레이하는 경우가 많았기에 마르키시오의 역량이 더욱 중요해진 경기였다. 특히 페레이라가 종적으로 자주 움직인 것에 비해, 포그바는 전반전 내내 왼쪽 측면에서만 제한적으로 움직이는 경우가 많았고, 설상가상으로 아사모아가 이런 포그바에게 아무런 지원도 해주지 못한채 겉도는 움직임만 가져가 자칫 양 측면의 밸런스가 무너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결국 이를 지원하는 역할도 마르키시오의 몫이었다. (뭐 그렇다고해도 우측에 비해 전반전 유벤투스의 왼쪽 측면은 답답했던건 마찬가지지만) 밀란의 2선과 3선의 미드필더들이 지나치게 내려 앉아 마르키시오에겐 그만큼의 자유가 주어졌고, 결국 마르키시오는 본인에게 공간과 볼이 쥐어졌을 때 그것을 활용할 수 있는 역량이 있다는 것을 증명한 셈이다.
위 그림의 상단부터 차례로 보면, 결국 밀란의 수비대형이 측면 선수들에게 휘둘려 무너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맨 상단에선 엘 샤라위의 커버가 늦어서 리히슈타이너가 박스 안으로 무혈입성하는 상황이고, 두번째 세번째 장면은 박스 부근까지 간격을 유지 못하고 지나치게 내려가 결국 마르키시오에게 많은 공간을 허용한 모습이다. 물론 밀란의 현재 선수들의 포지션을 봤을 때 마르키시오를 마크했어야 할 선수는 메네즈다. 실제로 메네즈는 마르키시오와 수차례 대치했지만, 제대로 수비를 하지 않았다. 이는 메네즈와 인자기가 체크해야 할 부분이다. 물론 지공상황과 역습상황에서 밀란의 모든 공격이 메네즈의 온더볼 능력에 의존하고 있고, 그만큼 메네즈 개인에게 많은 역할이 주어졌었기 때문에 마르키시오의 적극적인 마킹까지 주문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즉, 이는 메네즈 외의 다른 공격작업의 활로를 찾지 못한 밀란이 안고 있는 현재의 문제점이기도 하다.
이 날, 레지스타 위치에서 뛰는 듯한 마르키시오의 움직임은 인상적이었다. 피를로의 그 노련한 경기 운영에 비할 수는 없겠지만, 자신이 가진 장점인 역동성과 뛰어난 체력을 바탕으로 경기장을 누비며 안정적으로 패스를 공급하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아무래도 피를로에 비해선 느린 템포보다는 조금 더 업 템포에서 좋은 모습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3선으로 성공적으로 안착한 마르키시오의 모습은 유벤투스에게 또 다른 카드가 된 셈이다.
유벤투스의 변화 - 포그바 시프트
0-0으로 전반전이 끝났지만, 후반전에도 양 팀 모두 변화없는 라인업으로 시작했다. 그렇지만 알레그리는 공격작업에 있어서 작은 변화를 주었는데, 그 변화의 핵심은 포그바의 이동이다. 전반전 포그바의 활약을 개인에게만 국한해서 평가한다면 나쁘지 않았다. 측면에서 뛰어난 피지컬과 키핑력을 이용해 밀란의 우측에서 존재감을 빛냈다. 하지만 전체적인 팀의 입장에서 평가할 때, 페레이라와 리히슈타이너가 위치한 우측라인에 비해 포그바와 아사모아의 좌측라인은 답답해보였다. 아사모아와 포그바의 연계는 둔탁했고, 포그바가 활약한건 순전히 본인이 볼을 쥐었을 때 개인전술을 발휘하는 순간뿐이었다. 물론 리히슈타이너에 비해 아사모아의 움직임이나 측면을 활용하는 능력이 떨어졌기에 이것을 포그바의 문제로 전부 돌릴 순 없지만 주로 측면에 국한되었던 전반전 포그바의 움직임은 그리 좋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결국 포그바는 자신의 재능을 가장 빛낼 수 있는 중앙으로 이동했다. 동시에 전반전 답답했던 테베즈 역시 활동반경을 좀 더 넓혀 적극적으로 2선으로 내려와 움직였다. 결국 이러한 움직임은 밀란의 수비라인에 균열을 일으켰다. 일단 볼을 중앙에서 지켜낼 수 있는 선수가 늘어났다는 점은 밀란의 선수들을 더 끌어내릴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미 전반전부터 많이 뛴 밀란의 미드필더들, 특히 포그바와 자주 부딪혔던 폴리에겐 부담스러운 매치업이었고, 결국 밀란의 실점장면도 포그바가 마크하던 폴리와의 경합에서 이겨내고, 볼을 소유했기에 발생한 것이다.
1. 후반전들어 밀란의 양 미드필더들은 체력적 부담에 허덕였다. 측면을 커버하기 위해 나갔던 문타리의 복귀 속도가 늦어졌고, 결국 마르키시오에게 공간이 열렸다. 이에 바이탈 존(위험지역)을 사수하던 데 용은 마르키시오를 마크하기 위해 전진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동시에 포그바는 박스 안으로 침투. 이 때 문타리의 늦은 커버와 더불어 밀란이 범한 수비실책을 하나 더 발견할 수 있는데, 그것은 박스 안의 두 명을 마크하기 위해 비효율적으로 네 명의 수비인원이 배치된 상황을 들 수 있다. 사실 원칙적으로 밀란의 3미들이 효율적으로 돌아갔을 시, 위 상황에서 데 용의 빈 자리, 즉 바이탈 존을 사수하기 위해 전진해야 될 미드필더는 폴리였다. 하지만 폴리는 포그바를 마크하기 위해 박스 안으로 내려갔고, 결국 공격수 두 명을 마크하기 위해 수비수 네 명이 배치되는 비효율적인 수비라인이 형성된 것이다.
2. 결국 마르키시오의 볼은 테베즈에게 연결됐고, 이를 커버하기 위해 아바테가 전진했다. 테베즈는 곧바로 박스 안에서 자리잡고 있던 포그바에게 볼을 연결했다.
3. 포그바는 볼을 소유하고, 이를 지켜낼 수 있는 능력의 선수다. 박스 안으로 들어온 포그바는 마크하던 폴리의 압박을 이겨내고 볼을 키핑함으로서, 주변의 센터백들을 끌어당겼다. 이 때 테베즈는 포그바가 시선을 끄는 사이 아바테의 이탈로 비어있던 공간으로 침투했고, 결국 포그바는 볼을 테베즈에게 연결함으로써 골을 만들어냈다. 사실, 이 장면에서 테베즈를 마크하러 나갔던 아바테는 끝까지 테베즈에게 마크가 붙었어야 했다. 하지만 아바테는 전진했다가 테베즈를 놓쳤고, 놓치자 테베즈가 아닌 포그바를 마크하러 움직였고 마크맨이 없어진 테베즈는 아비아티와 1대1 기회를 맞을 수 있었다. 물론 박스 안에 위치했던 혼다에게도 책임을 물을 순 있겠지만, 아사모아를 마크하기 위해 측면에 위치했던 혼다에게 박스 안까지의 커버까지 바라는 것은 혼다에게 너무 무리한 요구라 생각한다.
이후 유벤투스의 교체는 비달↔페레이라, 리히슈타이너↔호물루의 교체가 이루어졌지만, 사실 전술적으로 큰 변화를 주기보다는 선수들의 컨디션 점검 및 체력관리를 위한 교체였기에 이후 경기양상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플랜B의 부재 .. 아직은 갈 길이 먼 밀란
후반전으로 접어들었지만, 밀란의 테마는 전반전과 동일했다.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중앙의 미드필더들에게서 전반전만큼의 활동량을 볼 수 없었다는 점이다. 횡으로 넓어지는 현 밀란의 진형이 각 라인별 간격까지 멀어지게 되면서 결국 볼을 끊어내더라도 상대 진형으로 역습을 나가기도 힘들었을 뿐더러, 쉽게 다시 유벤투스의 선수들에게 고립되는 상황이 자주 연출됐다. 그리고 라인이 일단 내려가 앉아 있었기에 샤라위와 메네즈가 볼을 잡더라도 상대 진영으로 넘어가기까지의 거리가 멀었고, 후반전 중반이 지나자 공격수들과 측면으로의 전개가 굉장히 느려지고, 선수들이 힘에 부쳐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메네즈는 온더볼에 있어 한 방을 가지고 있는 선수긴 하나, 결국 패스 선택지를 많이 가져다주는 선수는 일단 아니기도 하고 메네즈의 최대 무기인 드리블을 극대화하기 위해선 결국 문전 앞에서 볼을 이어받아야 했지만 볼을 받는 위치가 내려간 이번 경기에선 혼자서 볼을 전진시켜야 되는 임무를 도맡은 덕에 필드내 영향력이 굉장히 반감될 수 밖에 없었다. 아직 몬톨리보의 복귀까진 시간이 남아있기 때문에, 인자기에겐 이번 시즌 좋은 성적을 위해선 강한 압박을 걸어오는 팀들을 상대로 어떻게 안정적으로 빌드업을 진행할 것인가에 대한 과제가 주어진 셈이다.
초보 감독인걸 감안하면 지금까지 밀란을 이끌어온 인자기의 능력은 나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뒤지고 있을 시에 시도할 수 있는 플랜B가 전혀 없었다는 것과 교체 타이밍과 교체 선택에 있어선 아쉬운 모습을 보였다. 유벤투스가 실점 이후 상대적으로 라인을 내렸기에, 득점이 필요해진 밀란은 라인을 올려 측면 공략에 열을 올렸다. 수비가담하느라 체력이 방전된 샤라위를 보나벤투라와 교체하며 분위기 반전을 노린것까진 이해되는 카드였다. 하지만 효과는 뚜렷하지 않았고, 결국 남은 카드는 뒤늦은 파찌니와 토레스, 정통 공격수 투입이었다. 그렇지만 교체 투입의 시기가 늦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리고 교체에 있어 전문 키커(혼다)를 빼버리고 박스 안으로 공격수를 투입해 롱볼로 유벤투스를 공략하려고 했던 점은 결국 실점 직후의 대처에 있어서 미흡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꼴이다. 밀란은 공격수 둘을 투입하면서 메네즈와 보나벤투라를 측면으로 배치, 4-4-2와 같은 변화를 보였지만 오히려 플랫에 위치한 문타리와 데 용은 팀의 템포를 살리지 못했고, 잦은 미스로 오히려 유벤투스의 공격진(테베즈-요렌테-포그바)에게 많은 뒷공간을 노출하면서 추가 실점의 위기를 맞을뻔 했다. 수비적인 데 용에 비해 공격적인 역할을 맡아 박스 투 박스로 공간을 점유해줘야 할 문타리는 결국 체력 방전으로 잦은 미스와 볼 경합에서 계속해서 뒤처지는 모습을 보였다. 따라서 밀란의 주전술은 역습이었지만, 형편없는 사이드 체인지(반대 측면으로의 공간 생성 + 볼 전개)로 유벤투스의 단단한 골문을 끝내 공략하지 못했다.
마무리
결국 산 시로였지만, 시종일관 자신의 흐름을 가져간 유벤투스의 1 : 0 승리로 경기는 끝이 났다. 초반 2연승으로 올시즌 새롭게 달라진 밀란을 기대하게 했던 인자기는 결국 유벤투스라는 시험을 통과하진 못했다. 홈에서의 이러한 패배는 인자기에게 아직 해야 할 과제가 많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재확인시켜 준 셈이다. 그렇다고 밀란의 팬들은 너무 낙담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인자기의 인터뷰대로, 만약 혼다의 초반 헤더가 성공했다면 결국 어떻게 바뀌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물론 밀란은 유벤투스에 비해 부족한 모습을 보였지만, 유벤투스는 당연히 3년 연속 리그 우승을 차지한 이미 틀이 잡힌 최상급 팀이고, 밀란은 새롭게 시작하는 도전자라는걸 감안하면 이러한 결과는 충분히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였다. 오히려 이번에 영입된 선수들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기에 밀란의 미래는 아직까진 밝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유벤투스는 리그 3연승과 함께 인상적인 경기력으로 역시나 이번 시즌도 자신들이 이탈리아에서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라는 것을 증명했다. 전임 감독인 콘테가 리그에서 좋은 모습을 보였기에, 알레그리에게 초반 리그 성적과 경기력은 굉장히 부담스러운 과제였다. 따라서 이번 밀란 원정에서의 승리는 알레그리에게도 의미있는 승리가 되었다. 이 날의 승리가 알레그리의 말대로 "복수"가 아닐지언정 말이다. 앞으로 올시즌 유벤투스를 통해 밸런스 좋은 중앙 미드필더들과 전방에서 경기를 흔들어줄 수 있는 선수가 알레그리에게 쥐어졌을 때, 얼마나 팀을 단단하게 만들 수 있는지 기대해도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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