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보다 위대한 최초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남들이 하지 않았던 미개척 영역에서 새로 무언가를 창출하고 이끌어 나간다는 것은 그 결과와는 별개로 높은 점수를 받을만하다.
위 사진에 나열된 감독들은 축구팬들에게 일반적으로 "전술가" 또는 "전술적인 능력이 뛰어난 감독"이라 불리는 감독들을 개인적으로 뽑은 것인데.. (대부분 동의하리라 생각한다..) 이들은 왜 그런 호칭을 들었던 것일까? 그 이유는, 위의 지도자들은(미헬스부터 가장 최근의 펩까지) 모두 그 시대에 다른 누구도 생각치 못한 전술적인 창조를 해냈거나, 이전까지와는 다른 스타일(시대의 유행에 편승하지 않고)의 전술로 새로운 트렌드를 이끈 감독들이기 때문이다.
뭐, 이미 그 위대함에선 말해봤자 입이 아픈 미헬스나 사키를 제외하더라도.. "전방압박"과 "쓰리백"으로 대표되는 닥공의 비엘사나, 4-4-2가 유행하던 EPL을 씹어먹으며 4-3-3 전형에서 새로운 트렌드를 제시한 무리뉴, '제로톱' '4-6-0'이라는 현재 유행하는 False 9의 시발점이었던 로마의 스팔레티, 뭐 누가 뭐라고 깍아내리던간에 현재 세계 축구계의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는 펩까지 모두 시대의 흐름에 편승하지 않고, 자신만의 철학으로 트렌드를 바꾼 감독들이다.
그러나 여기서 한가지 의문점을 들 수 있다. 전술가라는 명칭은 언급한대로 새로운 틀이나 유행, 흐름을 주도한 감독들을 주로 칭해왔는데, 과연 전술적인 부분에 능하다는 것이 이러한 '전술'적인 창조성에만 국한되는 문제일까? 실제 선수들과 감독들이 뛰고 있는 축구가 마치 게임 속 세계처럼 어떤 부분별로 딱딱딱 능력치가 나오고, 수치로 환산할 수 있다면 얼마나 편하겠냐만은 '축구'란 놈은 그렇게 쉬운 녀석이 아니지 않는가. 하지만 마치 저 감독들 외의 다른 감독들은 전술적 능력이 떨어지는 감독들로 오해받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심지어 천하의 퍼거슨도 가끔씩 그런 비판을 듣곤 한다. "전술적 능력은 부족하지 않나?"
전술이란 말 그대로, 병력을 운영하는 방법이다. 축구로 전환한다면, 선수들을 필드 위에서 어떻게 최대한 효율적으로 움직이게 하는 방법이 될 것인데, 이러한 뜻이 왜 '전술적 능력'을 논할때는 그렇게 의미가 축소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새로운 것이 아니더라도, 기존의 혹은 현재 유행하는 전술의 흐름을 잘 이용하는 것 자체가 감독의 전술적인 능력이다. 모든 감독들이 전술을 다루는 능력이 동등하고, 흐름을 쫓을줄 안다면, 말그대로 개나 소나 명장 소릴 들을테다. 가장 좋은 무기를 알아보고, 어떻게 이용하는 것이 최고인지 아는 것에 있어서 퍼거슨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예술 작품을 예로 들더라도, 그것을 모방한 작품이 원조보다 더 뛰어나게 만드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모방이라는 말 자체가 부정적인 의미를 담기도 하지만, 퍼거슨은 이러한 능력에 있어서 그 누구보다도 뛰어나다. 퍼거슨은 지난 수십년동안 축구계에 몸을 담았지만, 한 번도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적은 없다. 그러나 누구보다 뛰어난 안목으로 언제나 그 시대의 흐름을 가장 먼저 파악하고, 가장 잘 이해하는 감독이었고 결국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체득시킨 다음 원조보다 더 능숙하게 그것을 활용할 줄 아는 감독이었다. 퍼거슨은 지난 20여년 동안 시대의 흐름을 단 한 번도 놓친 적이 없었고, 그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언제나 그 흐름에 탑승해 결국엔 가장 선두에 올라서는 팀이었다. 만약 그의 이런 전술적 능력이 형편없었다면, 과연 지금까지 프리미어리그를 지배할 수 있었을까. 아무나 이런 능력을 가졌다면, 맨유가 리버풀의 우승 횟수를 뛰어넘는 일따윈 아직까지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였을 것이다.
그리고 간혹 이러한 의견을 내세워 퍼거슨의 전술적 능력을 폄하하는 경우도 있다. "퍼거슨은 경기내에서 전술적으로 변화를 주어 팀을 승리로 이끄는 경우가 별로 없었다." "퍼거슨은 깔끔한 교체 타이밍과 선택으로 용병술에서 재미를 보는 것일뿐이다." 그렇지만 필자는 이렇게 반문하고 싶다. 경기내에서 전술적인 변화를 많이 준다는 것은 처음 경기 전에 들고 나온 전술에 일정 부분 문제가 있다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과연 전술적인 변화를 주지 않거나, 적게 주는 것이 그렇게 폄하받을 부분인가. 결국 축구의 목적은 승리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데, 경기 내에서 고집스러운 전술 운용으로 결국 패하거나, 열세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변화를 추구하지 않는 상황이 아닌 이상, 팀을 승리로 이끄는 감독에게 그러한 비판이 과연 타당한가 의문이다.
퍼거슨은 '늙은 여우'다. 보통 여우란 말은 간사하고 교활한 사람을 뜻하는데 퍼거슨은 아마 이 단어에 가장 잘 어울리는 감독이 아닐까. 퍼거슨은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것보다는 안정적이고 검증된 것을 선호한다. 괜한 위험을 무릎쓰고 시도하기보다는 기다렸다가, 다른 이들이 무언가 성공적인 것을 만들어 냈을 때 그것을 가장 잘 활용하는 것이 그의 방법이다. 경기내에서도 무리한 시도를 하거나 많은 변화를 주지 않는 모습에서 그의 이러한 성향이 잘 드러난다. 그렇게 퍼거슨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20여년 동안 천천히 그러나 끊임없이 변화하며 최강의 자리를 지켜오고 있다. 2012년으로 얘기를 돌리면, 현재 시대의 패러다임은 단연 바르셀로나가 쥐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전세계의 많은 감독들이 제2의 바르셀로나를 꿈꾸며 그들의 축구 철학을 따라하고 있다. 당연히 퍼거슨 또한 이를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을 것이기에, 개인적으로 그가 앞으로 만들어나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어떤 모습일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다시 처음의 얘기로 돌아와서, 누가 더 뛰어난 감독이냐. 전술적으로 훌륭한 감독이냐는 개인마다 생각하는 가치관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새로운 세상을 열었던 자를 높게 볼 것인지, 그 세상을 이어받아 가장 잘 통치했던 자를 높게 볼 것인지 그건 개인의 자유니까. 누가 왈가불가할 영역이 아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퍼거슨은 누구보다 오랫동안 최고의 자리에 군림한 명장중의 명장이다. 그런 감독에게 '전술적인 부분이 부족한 거이 아니냐'는 비판은 '골 세레모니하는 토레스'만큼이나 어색해보인다. 누군가 굳이 퍼거슨을 비판하고 싶다면, '왜 시대의 흐름을 뒤엎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적이 없었냐'고 까는게 그나마 맞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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