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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김연경

김연경, 일본에서도 유럽에서도 “살기 위해 배웠다”




한국 여자 배구팀은 일본 도쿄에서 열리는 2012 런던 올림픽 예선전(19~27일)에 참가 중이다. 현지 언론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선수는 단연 김연경(24·터키 페네르바체·192㎝)이다. 한국과 일본을 거쳐 지금은 터키에서 뛰고 있는 대표팀의 주포다. 여자 배구 대표팀 숙소 미니 뷔페에서 김연경을 만났다. 대표팀 선수들은 예선전 기간 소박하지만 깔끔하고 아늑한 이 뷔페에서 모든 식사를 해결한다.

지난 3월 소속팀을 유럽배구연맹(CEV) 챔피언스리그 우승으로 이끌고 MVP와 득점상을 차지한 뒤 국가대표팀에 합류한 김연경은 "이곳 음식이 입에 맞는다"고 했다. 그는 "국내에 있을 때는 전형적인 한국 입맛이었는데 다른 나라에 나가서 몇 년 뛰다 보니 상황에 따라 입맛도 변하더라"며 웃었다. 김연경이 한국에서 일본으로 또 유럽으로 활동 무대를 넓혀 나가면서 그의 음식 세계도 넓어졌다. '한국 입맛'이라던 김연경은 "이렇게 해야 사진이 잘 나올 것 같다"며 두 개의 접시에 파스타와 과일을 담아왔다. 


언니 따라 시작한 배구 "함께 했으면 좋았을 텐데…" 

-어렸을 때 가리는 음식은 없었나. 

"잘 먹는 편이었다. 잘 먹어야 키도 큰다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기 때문에 배구를 시작한 뒤로는 의식적으로 가리지 않고 먹으려고 했다. 하지만 중학교 3학년 때까지는 키가 크지 않아서 걱정이 많았다. 170㎝가 채 안돼서 주로 세터로 많이 뛰었고 리베로로 나선 적도 있다. 그 때는 키도 작고 배구도 못해서 그만두려고 생각한 적이 많았다."

-그런데 어떻게 배구를 계속하게 됐나. 언니 따라 배구선수가 됐다던데. 

"초등학교 때 운동은 좋아했지만 배구는 몰랐다. 먼저 배구를 시작한 큰 언니를 따라 다니다가 그냥 재미있어 보여서 시작했다. (김연경은 3녀 중 막내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시작했는데 5년 동안 키가 잘 자라지 않아 스트레스도 심했고 좌절도 많이 했다. 그때 안산 원곡중학교에서 배구를 지도해 주시던 김동열 선생님과 홍성령 선생님이 붙잡아주셨다. 그분들이 '너는 손발이 크고 골격이 좋아 곧 키가 클 것'이라고 말씀해 주셔서 배구를 계속할 수 있었다. 생각해보면 그때 세터와 리베로를 했던 경험이 기본기가 돼 지금 많은 도움이 되는 것 같다."

-고등학교(한일전산여고) 시절 키가 20㎝나 자라면서 빛을 보기 시작했다. 

"키가 크면서 배구도 잘 되고 관심도 많이 받았다. 물론 기뻤지만 한편으로는 조금 서글픈 생각도 들었다. 중학교 때는 '배구 꿈나무' 이런 선수들을 뽑을 때 아무리 열심히 해도 '작았기 때문에'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키 크고 성적이 나기 시작하니까 주니어 대표팀에 바로 뽑히고 사람들이 알아봐 주더라. 그런 점이 조금 당황스러웠다. 내가 정말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고 깨달은 건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드래프트 시즌이 다가오면서부터였다. (2005년 10월에 열린 프로배구 V-리그 2005~2006 시즌 신인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흥국생명에 지명) 그때는 정말 '내가 이 정도 선수가 됐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작 언니는 배구를 그만뒀다. 

"언니는 항상 '우리 막내 잘한다'고 자랑스러워 해준다. 지금까지 언니가 후회한다고 말했던 적은 없는데, 최근에는 내가 해외 진출도 하고 많은 관심을 받으니까 말은 안 하지만 조금 아쉬워하는 걸 느낀다. 나도 아쉽다. 언니가 나보다 배구에 소질이 더 많았다. 나는 키만 크지만 언니는 키도 크고 골격까지 좋아 높이에 파워까지 겸비하고 있었다. 배구를 계속했으면 나보다 훨씬 잘했을 거다. 같이 대표팀에 있는한유미·한송이 자매를 보면 '나도 언니와 저렇게 할 수 있었을 텐데…' 하고 아쉬울 때가 많다. 하지만 언니는 지금 언니의 분야(컴퓨터 강사)에서 인정받고 잘 하고 있으니 괜찮다."

데뷔 후 3년 연속 부상 "어차피 내 결정입니다" 

TIP. 김연경은 2004~2005시즌 5위에 그쳤던 흥국생명을 데뷔 첫 해(2005~2006시즌) 정규리그·챔피언결정전 통합 우승으로 이끌며 화려하게 데뷔했다. 그는 첫 해 정규리그 MVP와 챔피언결정전 MVP를 비롯해 신인상·득점상(정규리그 756득점)·공격상(542득점·공격성공률 39.65%)·서브상(서브에이스 45개)을 싹쓸이했다. 그러나 너무 많은 공격 시도(정규리그 1367회) 탓에 오른 무릎에 부상을 입어 뼛조각 제거 수술을 받았고 재활이 끝나기도 전에 2006 도하 아시안게임에 출전했다. 이후에도 계속 무리한 일정을 소화해 2006~2007시즌 후 왼 무릎 연골 파열, 2007~2008시즌 후 다시 왼 무릎 연골 파열 부상을 입어 결국 2008 베이징 올림픽 예선전에 출전하지 못했다. 

-데뷔 첫해 맹활약을 했지만 결국 수술대에 올랐고, 다 낫기도 전에 아시안게임에 나갔다. 

"솔직히 쉬고 싶은 생각도 있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태극마크를 다는 건 언제나 하고 싶은 일이다. 결국 내가 결정한 일이었고 후회는 없다. 나뿐 아니라 지금 함께 국가대표로 뛰고 있는 선배들 동료들 모두 잔부상을 안고 뛴다. 아픈 건 아픈 거고, 일단 코트에 서기로 내가 결정을 내렸으면 그때는 그냥 최선을 다하는 거다."

-그래도 3년 연속 수술대에 오를 때는 힘들었을텐데. 

"수술과 재활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용케 시즌은 거의 제대로 소화했다.(웃음) 한 가지 아쉬운 건 2008 베이징 올림픽 예선전에 참가하지 못했던 것이다. 아팠지만 가고 싶었다. 정말 가고 싶었기 때문에 수술대에 오르기 직전까지도 고민을 했다. 당시 감독님과 코치님들이 병원까지 와서 수술 여부와 재활에 걸리는 시간을 마지막 순간까지 확인했다. 미안한 마음도 있었지만 그때는 경기를 뛰기 어렵겠다고 판단을 했다. 선수 생명에도 지장이 있을 것 같았다. 어차피 무리해서 뛰었어도 큰 도움이 안됐을 거고, 그때 그냥 수술을 포기했다면 부상이 심해져 지금의 내가 없었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2009년에는 데뷔 후 처음으로 부상 없이 시즌을 마쳤고 일본에도 진출했다. 

"사실 일본에 갈 때는 부모님이 많이 말리셨다. 계속 아팠던 것도 있고 이제 막 국내에서 인정받기 시작했는데 편한 길을 놔두고 왜 먼 곳까지 가서 고생하려 하느냐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나는 일본이 최종 목적지가 아니라 더 큰 곳으로 나가고 싶은 꿈이 있었다. 또 넓은 세상을 보면서 더 큰 선수가 되고 싶었기 때문에 부모님을 설득했다. 부모님은 나를 잘 믿어주시는 편이다. 처음엔 반대하셨지만 일본에 있을 때나 터키에 있을 때 가끔 오셔서 밥도 해주시고 같이 여행도 다녔다."





일본에서도 유럽에서도 "살기 위해 배웠다" 

-그래도 외국 생활이 쉽지 않을 텐데, 집에서 해먹는 요리가 있나. 

"맛은 없지만 가끔 음식을 해먹기는 한다. 외국에 혼자 있으면 저절로 요리를 하게 되니까 이제는 기본적인 것은 어느 정도 한다. 주메뉴는 김치찌개와 부침개다."

-김치찌개 레시피를 공개한다면. 

"우선 김치가 맛있어야 한다. 그게 제일 중요한데 우리 엄마 김치가 맛있기 때문에 집에서 보내주는 김치를 사용하면 가장 큰 문제가 해결된다. 그걸 살짝 볶고, 물의 양을 잘 맞춰서 끊여 나가면서 내 입맛에 맞게 조미료를 넣어주면 된다. 원래 간단한 게 좋은 것 아닌가? (웃음) 거기에 참치만 넣어주면 참치김치찌개가 된다."

-아까 뷔페 메뉴는 파스타를 골랐는데. 

"한국에 있을 때는 철저히 한국 입맛이었다. 그런데 일본에 와서 지내다 보니 의외로 일본 음식도 입맛에 맞더라. 처음에는 조금 힘들었지만 한국 밑반찬을 집에서 떨어지지 않게 보내주기 때문에 가끔씩 한국 음식도 섞어 먹으면서 버텨나갔다. 시간이 지낼수록 익숙해지더라. 터키에 갈 때도 걱정이 많았는데 생각보다 터키 음식도 잘 맞았다. 음식 때문에 고생한 기억은 별로 없고, 지금 파스타를 고른 건 사진에 잘 나올 것 같아서다."

-그렇게 일본에서 적응해 나가면서 뭘 배웠나. 

"일본에서는 체계적인 시스템을 배웠다. 정말 깜짝 놀랐다. 여기 사람들은 계획을 짜도 내일, 모레만 생각하지 않고 1년 뒤나 3년 뒤를 생각한다. 나도 배구나 인생이나 길게 보고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배구는 일본 선수들의 수비가 좋고, 특히 리시브가 좋기 때문에 빈곳을 찾아 때리는 법을 배웠다. 밤마다 비디오를 보면서 생각하고 연습했던 게 효과가 좋았다. 공격 코스가 다양해졌다."

-유럽은 텃세가 있다고 하던데. 

"나도 그렇게 듣고 마음 단단히 먹고 갔다. 텃세가 있긴 있다. 그러나 나를 배척한 건 아니었고 기 싸움이 약간 있더라. 그들만큼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줘야 인정받을 수 있는 곳이었다. 일본에서 수비를 극복했다면 유럽에서는 높은 블로킹을 뚫어야 했다. 그걸 해내고 나니 유럽 스타일이 보이더라. 유럽 친구들은 배구를 즐기면서 재미있게 한다. 가끔 아침에 피곤하면 운동하기 싫을 때가 있는데 웃으면서 나가는 법을 배웠다."

-유럽에서도 최고의 선수가 됐는데 더 배울 게 있을까. 

"배울 게 한두 가지겠나. 일본에 갈 때도 유럽에 갈 때도 '어떤 걸 배우겠다'는 목적을 가지고 간 게 아니라 가서 살아남기 위해 할 수 있는 걸 하다 보니 배웠던 거다. 앞으로 더 힘든 곳으로 갈 텐데 거기서도 살아남으려면 뭐든 배워야 할 거다. 다 흡수할 준비가 돼 있다."




[출처 - http://kr.news.yahoo.com/service/news/shellview.htm?aid=2012052307000013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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