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축구팬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2011-12 시즌의 첫 번째 엘 클라시코는 다시 한 번 바르셀로나의 위엄을 확인시키며 레알 마드리드의 완패로 끝이 났다. 경기 전 양 팀의 최근 기세는 너무나 달랐다. 15연승을 달리던 '2년 차 무리뉴의 레알'과 잇따른 원정 경기에서의 부진으로 마드리드에 6점 차로 끌려가던 바르셀로나. 지금까지의 엘 클라시코와는 달리 마드리드가 승리할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고, 전반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그런 것처럼 보였다.
1 - 1. 엘클라시코 역사상 최단시간 골
킥 오프 휘슬이 울린 지 채 1분도 되지 않아 첫 골이 터진 것이다. 예상과 달리 4-3-3이 아닌 4-2-3-1로 공격적인 라인업을 들고 나온 레알은 시작부터 공격적인 압박으로 발데스의 실수를 유발시켰고, 결국 30초 만에 벤제마의 선취골로 기분 좋은 출발을 시작하였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골이었고 마드리드의 기세로 볼 때 바르셀로나가 혹시 무너지진 않을까 싶었지만 역시 현 세계 최고의 팀답게 바르셀로나 선수들은 침착하게 준비한 대로 경기를 풀어나갔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너무 빠른 실점이 오히려 바르셀로나에겐 다행스러웠다고 본다. 어느정도 시간이 흐르고 팽팽한 분위기에서 터진 실점은 자칫 의욕과 분위기를 다운시킬 수 있지만, 이렇게 비정상적으로 빠르게 실점했을 때, 오히려 정신을 차리고 더욱 집중할 수 있게 된 계기가 되지 않을까? 그거야 당사자가 아닌 이상 모르는 일이고, 아무튼 1-0으로 마드리드가 리드하게 되었고 바르셀로나와 펩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1 - 2. 선발 라인업 : 4-2-3-1 v 4-3-3
사실 레알 입장에서는 실리적으로 계산할 때, 지지만 않는다면 충분히 만족할만한 현 상황이었기에 무리뉴의 성격상 중원에 세 명의 미드필더를 배치하여 4-3-3 진형으로 다소 카운터를 노리는 형태의 경기를 준비해왔을 것이라 예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그동안의 연승으로 인한 자신감과 바르샤전 무승 기록을 깨고 싶었던 것인지 예상외의 공격적인 라인업을 들고 나왔다. 특히 주목할만한 것은 코엔트랑을 우측 풀백으로 기용한 것과 라스를 알론소의 파트너로 기용했다는 것이었다. 알론소가 수비 위치를 잡고, 라스가 좌·우, 중앙 가릴 것 없이 넓게 움직이며 바르셀로나 선수들을 압박해주는 식으로 마드리드의 2미들은 움직였으며 어느 정도 시간까지 분명히 효과를 보았기에 이러한 라인업은 성공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이과인대신 선발로 나온 벤제마는 골 결정력에서만큼은 이과인보다는 떨어졌지만, 바르셀로나 선수들의 압박에도 볼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을 지녔고, 또한 2선에서의 연계는 물론 수비진을 흔들 수 있는 드리블을 가졌기에 엘 클라시코를 위한 공격수로 최적이었다.
펩의 첫 선택은 역시 4-3-3이었다. 3-4-3을 시작부터 돌리기엔 상대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는 일이었고, 위험부담 역시 컸으니까. 그렇지만 눈에 띄었던 것은 역시 세스크와 산체스의 선발출전이었다. 산체스와 메시를 좌우에 위치시켰고 세스크가 제로톱으로 뛰는 전형이었는데, 엘 클라시코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 또한 의외의 라인업이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세스크의 제로톱 전술은 초반까지 분명히 좋지 못했다.
레알 마드리드 이야기
2 - 1. 패했지만 빛나던 선수들
우선 선취골의 주인공인 벤제마부터 언급하자면, 그야말로 일취월장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선수다. 이번 시즌 리그에서는 이과인과 벤제마가 번갈아 출전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챔피언스리그나 강팀과의 경기에서 벤제마가 주로 선발로 나오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이과인과의 비교에서 벤제마가 우위를 점하는 드리블, 연계능력, 키핑력덕분인데. 바르셀로나와 같은 압박이 강한 팀과의 경기에서 최전방 스트라이커에게 필요한 움직임을 모두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바르셀로나 진영에서 볼을 잡게 되면 순식간에 주위를 둘러싸는 바르셀로나의 강한 압박을 이겨내기 위해선 동료 선수들이 박스까지 올라올 시간과 공간을 만들어줄 볼 소유에 능한 선수가 필요한데 그게 벤제마고, 시종일관 벤제마는 무리뉴의 요구에 맞게 경기하였다. 또한, 볼이 없을 시에도 벤제마는 골키퍼부터 시작되는 바르셀로나 특유의 빌드업에 대응하여 지속적으로 발데스를 압박하며 실수를 유발시켰고, 벤제마는 좌우 가릴 것 없이 움직이며 바르셀로나의 1.5선에서 수비진의 균열을 만들었던 가장 위협적인 선수였다.
반면 후방에서 가장 눈에 띄던 선수는 단연 라스였다. 이날 라스는 알론소를 가운데 축으로 횡으로 넓은 활동반경을 가져가며 바르셀로나 선수들의 침투를 매우 적절히 커버하였다. 뛰어난 위치선정에 비해 기동력과 직접적인 압박을 시도하는 능력에서 다소 부족한 알론소를 보완하기 위해 파트너로 선발된 선수는 케디라가 아닌 라스였다. 우선 라스가 케디라에 비해 기동력에서 더 뛰어났기 때문이고 어느 정도 바르셀로나 선수들을 상대하기 위해선 평소보다 후방에 머무르는 비율이 높을 것이고 그런 만큼 케디라와 같이 박스투박스에 능한 선수보다는 오히려 측면 커버링에서 뛰어난 라스가 더 좋은 선택이기 때문이다. (물론 라스의 가끔 무모한 드리블이 문제가 되기도 하지만, 이번 경기에서 라스는 하프라인 아래에서 계속 위치했다.)
바르셀로나가 후반전, 전형을 계속해서 바꾸며 우위를 가져가기 전까지 전반전 내내 바르셀로나의 공격이 원활하지 못했던 것은 라스의 활약이 매우 크다. (물론 전반 30분 메시의 드리블에 이은 산체스의 골을 허용하긴 했지만, 충분히 좋은 활약이었다.) 따라서 라스가 생각보다 일찍 교체된 것은 무리뉴 입장에선 안타까웠다. 라스의 경고때문에 퇴장을 우려하여 그를 뺀 것도 어느 정도 타당한 이유였으나 만약 마르셀로의 자책골이 터지지 않고 계속 동점상황이었다면 라스를 유지했을 가능성이 더 크다. 갑작스러운 실점으로 역전당한 상황에서 무리뉴 입장에선 어느 정도 공격적인 모습을 보여줄 수밖에 없었고, 결국 라스와 달리 박스투박스에 능하고, 피지컬적인 우위로 상대진영에서 좀 더 공격적인 모습(실제로 효율적인 움직임을 보여준 적은 손에 꼽을 정도지만)을 보여줄 수 있는 케디라를 예상보다 빨리 투입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2 - 2. 고개 숙인 남자... R9
선취골이 일찍 들어간 이후부터, 마드리드는 더욱 거세게 몰아치기보다는 한 템포 쉬어가는 모습을 보였다. 물론 발데스로부터 시작되는 빌드업은 철저히 압박했지만, 위험지역을 벗어나게 되면 무리해서 압박하지 않았기에 바르셀로나가 다시 제 리듬을 찾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우선 오른쪽 풀백으로 출전한 코엔트랑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아르벨로아의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니었는지 예상과 달리 코엔트랑이 풀백으로 나왔고 수비시, 이니에스타나 산체스 같은 선수들에게 밀리지 않고 기대 이상의 좋은 모습을 전반전까지 보여주었다. 그러나 문제는 공격이었다. 주발이 왼쪽인 코엔트랑이 우측에서 뛰더라도 수비 시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공격 시엔 다르다. 분명히 주발과 익숙지 못한 포지션은 오버랩에서 문제가 되는 부분이었고, 공격가담 시 별 효과를 보기 어렵다. 또한, 활동량이 넓었던 산체스가 측면으로 움직여주며 풀백들의 오버랩을 제한시켰기에 코엔트랑은 전진하기 어려웠다. 결국, 왼쪽 라인에 비해 오른쪽 라인은 디 마리아에게만 의존하는 경향이 컸다.
이러한 모습때문에 외질은 주로 디 마리아를 돕기 위해 중앙과 우측면에서 움직였다. 물론 그마저도 아비달과 부스케츠의 효과적인 압박에 성공했다고 보기 어려웠지만, 외질의 움직임은 타당해 보였다. 그러나 이러한 연쇄반응으로 진짜 문제가 터진 곳은 왼쪽의 호날두였다. 외질이 주로 우측에서 움직이게 되었고, 마르셀로는 메시와 산체스 같은 선수들 때문에 평소 같은 오버래핑을 보여주지 못했고, 호날두는 평소보다 더욱더 고립되었다. 호날두는 위치선정이나 동료들과의 연계가 좋은 선수가 아니기에 동료의 지원 없이 홀로 압박에 빠지게 되면 힘을 쓰기 어렵다. 특유의 피지컬을 이용한 돌파는 바르셀로나와 같은 팀을 상대로 통할 확률도 낮아지고 말이다. 물론 이날 호날두의 컨디션이 평소보다 좋지 못했다.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결과물을 강요받는 조급함이 눈에 보였다고나 할까. 알베스가 올라가기 전까지 호날두는 알베스와 우측에 치우친 푸욜의 협력수비에 계속해서 막혔다. 나중에 알베스가 올라가고 바르셀로나의 쓰리백을 상대로도, 더 많은 공간이 났지만 푸욜만 만나면 공은 멈췄다. 물론 경기중에 이런 호날두를 도우려고 벤제마가 왼쪽으로 빠지는 움직임이 많았고, 좋은 기회도 있었다. 그러나 이날의 호날두는 벤제마가 만들어준 기회를 어이없이 날려 먹는 등 정상적인 모습이 아니었다.
2 - 3. 샤비 알론소와 외질, 그리고 엘클라시코
호날두가 본인 커리어에 남을만한 최악의 경기를 펼쳐주는 바람에, 다소 덜하긴 했으나 이번 경기에서 알론소와 외질은 또 일부 팬들에게 비난을 받았고 이는 더는 낯선 일이 아니다. 매번 엘클라시코가 끝나면 가장 비난받던 선수들이었으니까.
외질은 이번 경기에서 굉장히 무난한 활약을 보였으나, 레알이 이기기 위해선 그 이상의 플레이가 필요했다. 분명히 외질은 No.10으로서 공격의 중추가 되어야 할 선수였으나 그러지 못했고, 결국 레알의 공격은 날카롭지 못했다. 외질은 넓은 활동반경과 뛰어난 위치선정으로 3선에서 1선의 공격수들에게 볼을 잘 연결해주었다. 이는 외질이 나가고 카카가 들어온 뒤의 레알의 단조로운 플레이를 보면 그전까지 공을 받아주는 외질의 움직임이 얼마나 깔끔했는지 알 수 있다. 문제는 외질의 위치는 그보다 더 전방에서 뛰어야 됐고, 상대의 압박을 벗겨 내고 중앙에서 공을 좀 더 소유해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외질은 중앙에서 뛸 때 계속해서 부스케츠에게 가로막혔다. 결국, 압박을 이겨내지 못하자 측면으로 빠질 수밖에 없었는데, 바르셀로나가 가장 잘하는 게 그 측면에서의 압박으로 상대의 공격을 무산시키는 것이니 레알의 공격이 비효율적이었던 건 당연했다. 중앙에 3명의 미드필더를 배치하지 않고 대신 외질을 투입해서 공격적인 라인업으로 나왔던 만큼 외질에게 거는 기대는 컸지만, 이번에도 외질은 엘클라시코에서 빛나지 못했다. 후반 52분, 1-2로 역전당하자 기대에 못 미쳤던 외질을 일찍이 카카와 교체시켰다. 이렇게 되면 미드필더와 공격수 간의 간격이 벌어지거나, 선수 개개인의 역습에 의존하는 다소 단조로운 방식의 공격전개로 될 우려가 있었으나 무리뉴 입장에서는 뭔가 변화가 필요했고, 전반까지 보여준 경기력으론 바르샤를 잡을 가능성이 많아 보이지 않았기에 모험수를 걸 수밖에 없었다.(결과야 어찌 됬든. 아, 카카의 교체도 자책골이 터지지 않았다면 좀 더 늦어졌겠지만)
알론소도 마찬가지의 경우다. 레알에서 현재 알론소를 대체할만 한 선수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만큼 후방에서의 밸런스 조절과 빌드업에서 알론소는 큰 역할을 차지한다. 그러나 바르셀로나와 같이 조직적으로 강한 압박이 들어오게 되면 평소보다 탈압박이나 패스의 정확도에서 문제가 될 수 있다. 거기다 좌우 풀백들 역시 평소보다 올라가지 못하는 상황이었고 상대의 압박과 디 마리아와 호날두의 좋지 못한 탈압박으로 레알의 1선과 2선의 간격은 시간이 지날수록 벌어지게 되었다. 결국, 빌드업은 개인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었고 알론소와 센터백(라모스)의 롱패스의 빈도가 평소보다 더 높아진 것이다. 빌드업과 더불어 이날 알론소는 전반 이른 시간에 경고를 받게 되었는데, 이 경고 1장으로 알론소의 움직임은 더욱더 제한받게 되었다. 그리고 알론소는 전방에서의 압박에 어울리는 선수가 아닌데, 후반전 레알이 라인을 올리자 이러한 문제점이 또 발생하게 되었다. 마지막 쐐기골인 세번째 실점장면에서 벌어진 2선과 3선 사이에서 공간을 막아야 할 선수는 알론소였으나 지나친 전진으로 공간을 내주었고, 결국 바르셀로나의 빠른 역습에 실점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오히려 이 때 커버하러 달려온 선수는 케디라였으며 알론소가 공격에서 수비로 전환되는 속도에서 뒤처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반면에 바르셀로나의 부스케츠는 이 날 2선과 3선을 오가며 적절히 빈 공간을 커버해주고, 밸런스를 잡아주며 알론소와 비교하여 뛰어난 활약을 보였다.
케디라는 뛰어난 활동량에 비해 위치선정이나 수비라인의 밸런스를 잡아주는 역할에 능하지 못하다. 결국, 그 역할은 알론소가 해주어야 할 부분이었으나 지나친 전진으로 외려 실점을 허용했다. 특히 카르발료의 부상으로 올 시즌 호흡을 맞추고 있는 페페와 라모스는 둘 다 전진성향이 높은 수비수들로서, 뒷공간을 상대에게 허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레알의 전력이 워낙 강했기에 그런 문제점은 드러나지 않았지만, 상대가 바르셀로나라면 그러한 약점은 두드러지기 마련이다. 결국, 2선과 3선을 오고 가며 빈 공간을 커버해줬어야 되는 알론소가 좀 더 분발했어야 된다고 본다.
바르셀로나 이야기
3 - 1. 바르셀로나의 기본 라인업 : 4-3-3
초반에 레알이 보여준 전방압박은 매우 위력적이었다. 공격수들의 움직임이나 간격유지도 좋았고 포어체킹도 매우 빠르게 이루어지며 발데스를 비롯한 바르셀로나 선수들의 실수를 유발시켰다. 전방, 역시 마찬가지였다. 전반전은 레알마드리드 선수들의 간격이라던가 압박은 매우 좋았고, 4-3-3을 들고나왔던 바르셀로나는 제대로 공격을 풀지 못했다. 전방에 있던 세스크와 메시, 산체스는 서로 간의 스위칭으로 공간을 만들려 노력했지만, 효과가 없었다. 세스크는 최전방에서 레알의 압박 속에 제대로 된 움직임을 가져가지 못했고, 샤비 또한 쉽게 전진하지 못했다. 산체스와 계속해서 측면으로 빠지는 움직임을 가져갔던 이니에스타 역시 코엔트랑과 디 마리아의 협력수비에 쉽게 돌파구를 찾지 못했고, 결국 초중반까지 바르셀로나는 레알의 압박에 대처하지 못했다. 경기가 답답해지자 메시는 자신의 드리블에 의존해야만 했고, 그마저도 라스와 마르셀로에게 가로막혔다.
3-4-3을 처음부터 들고 나오기엔 부담스러웠던 베르나베우 원정이었기에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4-3-3을 들고 나왔지만, 이미 실점을 한 상황이었고 세스크의 제로톱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자, 빠르게 펩은 선수들에게 다른 주문을 하였고 그것은 정확히 먹혀들어갔다.
3 - 2 - 1. 첫 번째 전술변화 : 4-3-3 메시's 제로톱
세스크가 최전방에서 레알의 압박에 고전을 면치 못하자, 오히려 이니에스타를 더 전진시켰고 메시와 세스크를 후방으로 내려서 볼의 흐름과 포제션을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도록 지시했다. 산체스는 중앙과 우측에서 움직이며 많은 활동량으로 레알 수비들의 전진을 막았으며 뛰어난 드리블로 메시와 함께 수비진을 흔들었다. 메시와 세스크가 1.5선으로 내려오면서 중앙에서의 볼 전개는 좀 더 매끄러워졌고, 부담이 줄어든 샤비는 그만큼 전진할 수 있게 되었고 페너트레이션도 살아났다.
메시가 중앙으로 내려가면서 오히려 이니에스타와 산체스가 좌우 측면과 중앙에서 움직였다. 실점 이후 다시 수비라인이 안정되자 알베스의 오버래핑도 점점 살아났으며 바르셀로나는 정상적인 경기운영을 찾았고, 샤비와 알베스, 산체스or메시의 우측에서의 패스웍은 레알의 수비진을 위협했다. 그러나 이와 달리 왼쪽의 패스웍은 좋지 못했는데, 아비달의 공격가담이 알베스만큼 높지 않았고, 반대편의 호날두와 달리 디 마리아의 수비가담이 매우 좋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샤비와 달리 측면에서의 페너트레이션에서 아직은 익숙지 못한 세스크의 움직임도 문제가 있었다. 따라서 반대편의 산체스와 달리 이니에스타는 고립되는 경우가 많았다. 어찌됬든 이렇게 약간의 변화를 줌으로써 바르셀로나는 살아났지만, 여전히 레알의 압박은 좋았고 경기는 팽팽하게 흘러갔다. 그러나 메시는 놀라운 드리블로 결국 산체스의 골을 만들었고, 결국 전반은 1-1로 한 치의 양보 없이 마무리되었다.
3 - 2 - 2. 두 번째 전술변화 : 3-4-3
4-3-3으로 만족할 만 한 경기력이 나오지 않자, 펩은 전반전 중반부터 알베스를 적극적으로 올리기 시작해서 결국 3-4-3으로 대형을 변화시켰다. 인터뷰에서 펩이 원래 3-4-3을 준비했었다고 언급했지만, 경기중에 이렇게 자신 있게 포메이션 전환이 성공적이었던 것은 두 가지 요인이 있었다. 첫째, 호날두의 몸놀림은 위협적이지 못했고, 호날두를 도와줘야 할 마르셀로 또한 전진하지 않았기에 호날두는 더욱 고립되었고 알베스에겐 그만큼의 측면에서의 여유가 있었다는 점. 둘째, 산체스의 측면뿐 아니라 최전방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여담으로, 이번 시즌 영입된 산체스는 아마 올 시즌 바르셀로나의 후반기에 가장 중요한 선수가 되지 않을까 싶다. 아직 동료와의 연계 같은 부분에서는 좋은 점수를 받기 어렵지만, 드리블이나 빈 공간으로 빠지는 움직임, 수비가담, 활동량, 측면과 중앙에서 모두 좋은 모습을 보였다는 점은 충분히 매력적이다. 다시, 돌아와서 세스크와 달리 중앙에서 볼을 확실히 소유할 수 있던 산체스였기에 펩은 그를 최전방에 놓을 수 있었고 3-4-3으로의 변화가 가능했다.
확실히 레알의 압박에 고전하던 바르셀로나는 3-4-3으로 전환 후 중앙에서의 볼 소유와 흐름이 좋아지자, 패스의 정확도나 횟수에서 경기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후반전 들어 지나친 압박으로 레알 선수들의 움직임이 조금씩 줄어들자, 바르셀로나는 본인들이 원하는 경기를 할 수 있었다. 특히, 샤비의 중거리 슛이 행운의 골로 이어지면서 레알 선수들의 정신력은 무너지기 시작했고 조급해진 반면에 바르셀로나 선수들은 더욱더 침착하고 느긋하게 경기를 할 수 있었다. 중앙으로 메시와 세스크, 샤비가 위치하면서 레알의 미드필더들을 압도할 수 있었고, 라스와 알론소는 언제나 수적열세에 빠져 있었다. 산체스는 중앙과 좌우를 넘나들며 양 측면을 지원했고, 이니에스타와 알베스는 측면수비수들을 괴롭힐 수 있었다. 특히 마르셀로는 알베스의 위협에 전진할 수 없었고, 레알이 자랑하던 왼쪽 라인은 바르셀로나에게 붕괴되었다. 그러면서 레알의 선수들은 왼쪽으로 치우칠 수밖에 없었고 그 반대급부로, 이니에스타는 전반전보다 자유로워졌다. 거기다 세스크의 추가 골로 1-3으로 벌어지자 무리뉴가 디 마리아를 빼고 이과인을 투입하였고, 이는 이니에스타에게 날개를 달아준 셈이 되었다.
3 - 2 - 3. 바르셀로나의 공격과 수비
우선, 경기 후 가장 의아했던 것은 바르셀로나의 쓰리백은 이미 여러 번 가동된 바가 있었고 엘 클라시코에서 충분히 예상 가능한 전술이었음에도, 무리뉴가 쓰리백에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하고 완패했다는 점이다. 쓰리백으로 전환 후 라스와 알론소는 수적 열세를 극복하지 못했고 이리저리 휘둘렸다. 물론 라스의 놀라운 운동량은 메시가 평소만큼 드리블하지 못하게 만들었지만, 그만큼 다른 빈 공간이 생겨나니까 바르셀로나로서는 손해 볼 게 없었다. 호날두의 수비가담이 거의 없다시피 하면서 마르셀로는 홀로 메시or산체스, 그리고 알베스를 막아야 했고, 그만큼 뚫릴 수밖에 없었다. 반대쪽 코엔트랑 역시 기대 이상의 수비를 해주었지만, 디 마리아가 빠진 이후에는 이니에스타에게 뒷공간을 허용했다. 또한, 라스가 케디라와 교체되면서 레알의 측면 공간은 더욱 커졌고, 레알의 간격은 점점 벌어지면서 레알의 1.5선은 거의 바르셀로나 선수들의 영역으로 바뀌어버렸다. 실점까지 한 상황에서 풀백들은 전진을 강요받았고, 더군다나 라스까지 없자 측면은 헐거워졌으니 이니에스타는 그야말로 날개를 단 격으로 종횡무진이었다. 레알의 간격이 벌어지자 측면에서 중앙까지 자신의 무대로 만들어버렸으니, 박수를 받을만한 활약이었다. 레알 입장에선 그 상태에서 제대로 된 역습은커녕, 추가실점을 허용하지 않은 게 다행인 상황이었다.
반면에 바르셀로나의 수비는 단단했다. 알베스가 올라가면서 푸욜이 우측 수비수로 배치됐지만, 호날두는 푸욜을 넘을 수 없었고, 여차하면 피케가 우측으로 치우쳐서 커버까지 해주니 호날두의 한 방은 나올 여지조차 없었다. 외질이 나가고 카카가 들어오고, 제대로 볼을 연결해주는 선수가 없어지자 벤제마도 고립되기 시작하였다. 카카는 분명히 역습 시 팀에 속도를 불어넣을 만 한 선수이나, 패스를 받아주는 능력이나 볼을 연결해주는 능력에서 부족했고, 레알의 공수간격은 벌어지면서 결국 개개인의 플레이에 의존하는 공격들이 나오기 시작하였다. 피케가 호날두 쪽으로 치우치면서 디 마리아는 아비달과 1:1경합을 벌일 수 있었으나 아비달은 몇 가지 실수를 저질렀지만, 흔들리지 않았고 2선의 부스케츠는 피케의 빈 공간을 메꾸며 아비달을 지원했다.
3 - 3. 바르셀로나가 3-4-3이 가능한 이유
엘 클라시코가 끝나고 전 세계 여러 언론에서 바르셀로나의 경기력에 찬사를 보냈고, 그럴만한 경기력을 보여준 것이 사실이다. 그것도 상대는 요즘 바르셀로나 이상으로 잘 나가던 레알이었으니. 그런 레알을 상대로 바르셀로나는 4-3-3과 3-4-3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며 그야말로 압도해버렸고, 이날의 경기는 펩이 그토록 이번 시즌에 많은 이들의 우려에도 3-4-3을 고집해온 것에 대한 그 결과물이기도 했다. 너무나 매력적이지만 자칫 자멸의 가능성도 있는 3-4-3을 펩이 고집할 수 있었던 근거는 무엇일까? 그것은 이 분야에서 가장 뛰어난 선수 두 명이 바르셀로나에 있기 때문이다. 바로 다니 알베스와 세르히오 부스케츠다.
이번 경기에서 빛나지 않았지만 대단한 활약을 했던 선수, 바로 부스케츠다. 언제나 부스케츠의 활약은 눈에 띄지 않지만, 바르셀로나의 경기를 보는 사람이라면 부스케츠가 하는 역할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다. 부스케츠의 공간이해력과 위치선정은 세계 최고 수준인데, 그중에서도 포백과 쓰리백을 넘나들며 수비수들의 뒷공간을 커버하는 능력은 그야말로 세계 최고라 할 수 있다. 레알의 뛰어난 측면공격수들을 상대로 쓰리백으로 전환하는 것은 그만큼 위험이 따른다. 호날두를 막기 위해 푸욜이 측면으로 빠지면서 피케 또한 오른쪽으로 치우쳤고, 아비달의 수비범위가 넓어졌다. 레알은 공격수들을 투입하는 상황. 이런 상황에서 웬만한 팀(다른 팀이었다면 쓰리백으로 전환조차 하지 않았겠지만)이었다면 다시 포백으로 전환하면서 좀 더 안정적으로 유지했겠지만, 바르셀로나에는 부스케츠가 있었다. 부스케츠는 유사시엔 피케 옆으로 내려와서 포백을 유지했으며, 또 중앙에 공간이 빌 때는 나가서 다시 밸런스를 맞추면서 바르셀로나의 수비진을 완벽하게 보호했다. 특히 아비달과 함께 디 마리아, 외질을 막아내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부스케츠는 빠르지도, 공중볼에 능하지도 않지만 세계 최고의 공간이해력을 지닌 선수다. 그런 부스케츠가 있기에 펩은 무모해 보이지만 단단한 쓰리백을 구사할 수 있다. 이렇기에 바르셀로나를 상대하는 팀은 부스케츠를 1차적으로 압박한다. 왜냐하면, 그가 빌드업의 핵심이니까. 그렇지만 이번 경기에서 외질은 부스케츠를 제대로 압박해주지도 못했고, 공격에서도 부스케츠에게 막히며 아쉬운 활약을 보였다. 후반전 들어, 지칠 대로 지친 레알이 간격이 신명 나게 넓어질 무렵, 바르셀로나의 넓은 대형이 완벽에 가깝게 좁게 유지되었던 이유도 바로 부스케츠의 밸런스를 조정하는 능력덕분이다. 바르셀로나를 상대하는 팀들이 반드시 신경 써야 될 선수, 그가 부스케츠다.
포백의 풀백으로 역할을 제한하기엔 에너지가 너무나 넘쳐 보이는 알베스는 3-4-3의 미드필더(혹은 윙포워드)가 최고의 자리라 생각한다. 웬만한 윙어 뺨치는 공격력을 자랑하는 알베스는 샤비&메시와의 측면 페너트레이션에서 특히 위력을 발휘한다. 또한, 이번 시즌 절정의 폼을 자랑하던 마르셀로를 녹다운시키면서 왜 자신이 세계 최고의 윙백인지 스스로 증명했다. 레알의 압박이 녹록지 않아 바르셀로나가 고전하자, 알베스를 윙으로 올리면서 공간을 넓게 벌렸던 바르셀로나는 마르셀로의 고립과 알론소의 과부하를 일으키며 알베스 효과를 누렸다. 세 번째 쐐기골 장면에서 메시와 함께 전진하는 알베스의 모습은 그야말로 놀라운 모습이다. 레알이 자랑하는 마르셀로&호날두의 왼쪽 라인을 알베스가 그야말로 지배했던 경기였다. 물론 알베스가 공격력만 갖춘 선수는 아니다. 포백에서의 수비력도 좋은 편인데, 호날두를 막은 뒤에 다시 앞으로 돌진하는 모습을 볼 때면 괴물이라는 말이 딱 어울린다. 알베스만한 다재다능하고 폭발적인 수비수가 현재 있냐고 물어본다면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
3 - 4. 샤비와 세스크 딜레마
바르셀로나 선수 중에 이번 경기에서 못한 선수가 누가 있겠느냐마는 굳이 꼽자면 역시 샤비와 세스크다. 못했다의 기준도 기대치가 높았기에 가능한 표현이겠지만. 우선 3-4-3으로 나올 때마다 느낀 것은 샤비를 위한 전술이 아니라는 점이다. 3-4-3으로 뛰게 되면 샤비의 역할이 4-3-3에서 뛸 때보다 다소 제한적이다. 우선 미드필더가 한 명 더 늘어난 만큼 빌드업과 페넌트레이션에 있어서 샤비에게 덜 의존하면서 볼 배급이 돌아갈 수 있게 된다. 또한, 3-4-3에서의 샤비가 위치한 측면중앙 미드필더에게는 그만큼의 수비부담이 추가로 더해지게 되고, 우측 수비수와 함께 협력수비를 하는 것이 중요해지니까. 물론 이날은 호날두의 컨디션도 워낙 좋지 못했고 실점 이후 레알의 자멸 덕분에 별다른 위기 상황을 맞진 않았지만, 밀란전과 같이 상대의 측면공격이 살아난다면 샤비의 부담도 그만큼 커질 것이다. 물론 샤비는 여전히 바르셀로나의 핵심선수다. 그러나 언제까지 샤비에게만 의존할 순 없고, 3-4-3은 샤비가 물러난 이후의 바르셀로나를 생각해 볼 수 있는 전술이 아닐까.
세스크의 경우는 기대보다 실망이 큰 경우다. 물론 이번 경기에서 쐐기골을 넣으면서 골은 기록했지만, 전체적으로 그가 보여준 경기력은 글쎄..에 가깝다. 우선 세스크의 제로톱은 상대가 레알과 같이 압박이 좋고 수비간격유지가 잘되는 팀일 경우, 아직은 부족하다고 볼 수 있다. 우선 세스크의 키핑이 레알 선수들의 압박을 최전방에서 버틸 만큼 능하지 못했고, 측면에서 선수들과의 스위칭에서 아직 익숙지 못한 모습이었다. 제로톱에서 나올 경우, 세스크의 높은 공간 이해력을 바탕으로 한 순간적인 2선 침투나, 득점력, 센스는 높이 살만하나 아직 정상급 팀을 상대로는 모자라 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세스크의 제로톱은 실패했고, 다시 좀 더 익숙한 2선으로 위치를 바꾸자 중원에서의 볼 컨트롤이 나아졌다. 물론 지금 2선에서 세스크의 자리는 이니에스타와 샤비라는 거성 때문에 찾기 어렵다. 그러므로 세스크를 지금 당장 활용하기 위해 3-4-3을 도입했을지도 모른다. 어찌됫든 바르셀로나는 세계에서 측면을 가장 잘 활용하는 팀이고, 바르셀로나에서 뛰기 위해선 측면에서의 움직임과 연계는 반드시 세스크가 발전시켜야 할 부분이다. 이니에스타가 전반전 고립되었던 것도 세스크의 측면지원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어찌 됐던 당장의 1년을 위해 영입된 선수도 아닐뿐더러, 아직 젊고 너무나 똑똑한 선수니 벌써 걱정할 필요는 없지만, 자꾸 이런 아쉬움이 드는 건 세스크에 대한 기대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결론
4 - 1. 과르디올라의 생각... 이유극강(以柔克剛)
펩이 궁극적으로 생각하는 바르셀로나의 전술은 3-4-3일까? 자칫 그렇게 오해하기 쉬우나 이번 엘 클라시코를 치르고 난 뒤 확신을 했다. 펩이 원하는 것은 3-4-3, 4-3-3와 같은 정해진 틀이 아니라 자유자재로, 특정 포메이션에 구애받지 않는 무형의 포메이션을 추구하고 있다. '노자'의 도덕경에 보면 이런 말이 있다. 이유극강(以柔克剛). "부드러움은 능히 강한 것을 이긴다." 무(無)형의 물은 단단한 유(有)형의 금속도 파고들만큼 강한 것이라는 구절이 있는데, 펩이 추구하는 전술의 이상향이 이것과 같지 않을까. 분명 라이벌인 무리뉴의 레알은 지난 시즌보다 더 강하고 단단해졌다. 그런 레알을 이기기 위해선 똑같이 단단함으로 부딪히기보단 자연스럽고 유기적인 다양한 포메이션의 변화로 그들을 제압하는 게 훨씬 좋은 방법임을 펩은 알고있던게 아닐까. 이제는 바르셀로나의 선발명단으로 그들이 어떤 포메이션을 들고 나올지 예상하는 일은 무의미해졌다. 첫 포메이션이 어떤 것이든 간에 그들은 경기중에 3-4-3, 4-3-1-2, 4-3-3과 같이 자유자재로 어느 한 틀에 얽매이지 않는 유기적인 축구를 구사하니까. 이렇게 정해진 주 전술없이 수시로 포메이션이 바뀌고 여러 자리에서 선수들이 뛰는 건 말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섣불리 시도했다 간 '이상주의자'라고 욕먹기에 십상이다. 그러나 지금 그 어려운 일을 펩과 바르셀로나의 선수들이 시도하고 있고 현재까지 성공적이다.
4 - 2. 무리뉴는 거북이를 따라잡을 수 있을까?
아무리 빠른 아킬레스라도 거북이가 자신보다 앞에서 출발한다면 결코 따라잡을 수 없다. 왜냐하면, 거북이를 뒤쫓는 아킬레스는 북이가 걷기 시작한 출발점에 도달하지 않으면 안 되는데 그 사이에 거북이는 그 출발점보다 더 앞서 나가 있다. 아킬레스가 그 점에 도달하기까지 거북이는 또 이미 그 앞에 간다. 이리하여 서로의 거리는 좁혀질 수 있어도 결코 아킬레스는 거북이를 따라잡을 수 없다. - 제논의 역설 中 아킬레스와 거북이의 역설
위 이야기는 다들 들어봤겠지만, 유명한 제논의 역설 중 하나다. 갑자기 왜 뜬금없는 소리냐고 묻겠지만, 이번 엘 클라시코를 보면서 필자의 쓸모없는 상상력은 저 어이없는 이야기를 떠올렸다. 무리뉴와 그의 레알 마드리드는 정말 강하다. 현재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로 자신 있게 승리할 수 있다고 말할 만 한 팀은 없다. 단, 바르셀로나를 제외한다면. 그만큼 바르셀로나는 강하고, 레알이 강해지는 만큼 강해지고 있다. 저 이야기 속 아킬레스처럼 뒤처져 있는 레알이 아무리 따라와도 그 시간 동안 바르셀로나는 다시 조금씩 앞서 가고 있다. 그게 벌써 몇 시즌째.. 마치 무리뉴와 레알은 제논의 역설 속 아킬레스와 비슷하다.
그만큼 이번 승리는 반드시 필요했지만, 또다시 바르셀로나를 넘지 못했다. 언제는 뭐 자신 없었던 적이 있겠느냐마는 이번만큼은 정말 자신 있었다. 선수들의 최근 폼도 좋았고, 전술의 완성도도 이전보다 나아졌고 상대의 기세는 한 풀 꺽여 있었으니까. 그러나 또 홈에서 완패해버렸다. 자신들의 전력을 과신했던 건지, 아니면 상대의 전력(정확히는 쓰리백)을 얕잡아봤던 건지는 알 수 없지만, 바르셀로나의 기가 막힌 포메이션 변화에 놀아나 버렸다. 기대가 컸던 만큼 타격도 컸다. 이제는 선수들의 멘탈문제도 지적받고 있다. 라이벌을 향한 승부욕도, 완패가 거듭되다 보면 두려움으로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강해졌는데도 잡지 못한다면 어떻게 해야 된단 말인가.
하지만 희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제논의 역설은 이미 궤변으로, 그 비상식적 논리가 깨진 지 오래다. 무리뉴는 전 세계 누구보다 지기 싫어하는 감독이고, 그의 선수들도 마찬가지다. 상대가 강해야 이겼을 때의 희열도 큰 법이니까. 단시간에 그들을 따라잡으리라 기대해선 안 된다. 그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손발을 맞춰온 팀이었으니까, 조급할 필요가 없다. 오늘 경기의 교훈으로 무리뉴도 분명 얻은 게 있었을 것이고, 이제는 다음 세비야전만을 생각하면 된다. 아직 엘 클라시코는 1차전으로 끝난 게 아니니까. 아킬레스가 거북이를 따라잡고, '제논의 역설'이라는 궤변 속에서 빠져 나올 수 있을지는 앞으로의 무리뉴의 손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