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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이번 런던 올림픽 번외 이야기 4가지.

런던 올림픽도 끝난지도 벌써 많은 시간이 지났다. 

여러 귀차니즘과 일로 미루는 바람에 이제서야 감상문(?) 아닌 감상을 쓰게 되었다..


뭐 리뷰나 우리 선수들에 대한 감상같은건 이미 온 넷에 쫙 깔려있으니.. 이번 올림픽과 관련하여 올림픽 외적 이야기를 좀 하고싶다. 

개인적으로 올림픽 기간동안 느끼고 생각했던 네가지 이슈를 얘기해보려 한다.





1. 우리나라 대표팀 배드민턴 승부 조작 -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좋게 표현해서 '져주기'지. 사실 '승부 조작'이 더 옳은 표현이 아닌가. 경기를 보면서 보는 내내 어이가 없고, 부끄러워서 참을 수가 없었다. 중국쪽이 먼저 했다고? 그걸 변명이라고 하는건가. 중국이 먼저 해서 억울하다고? 이의를 제기했다는 소식에 정말 입에서 욕이 절로 나올 수 밖에 없었다. 누가 '먼저' 했냐가 중요한게 아니라 그냥 했다 / 안했다 이것만 따지고 볼 문제다. 우리 나라의 다른 대표 선수들의 힘을 쭉 빠지게 할 최악의 행동이었고, 늦은 시간까지 올림픽을 보면서 응원해주는 국민들에 대한 모욕이다. 물론 죄질에 더 낫고 안 낫고가 어딨겠냐만, 중국과 비교해서도 우린 더 어이가 없는 이유였다. 중국은 같은 중국팀을 피하기 위해, 서로 결승에서 만나기 위해 조작질을 했지만.. 오히려 우리나라 대표팀은 중국이 무서워서, 중국 만날까봐 차라리 같은 한국팀끼리 붙어서 동메달이라도 건지기 위해 인도네시아와의 경기에서 조작질을 한 것이다. 과연 이런 사고방식이 나라를 대표해서 나오는 프로의 국가대표팀 감독과 코치, 선수단의 마인드라고 할 수 있을까. 어처구니 없다. 물론 선수들이야 감독이 시키는대로 했겠지만. 그렇다고 죄가 사라지는건 아니지. 이 조작질 덕분에, 그동안 1초의 재발견으로 억울하게 패한 신아람 선수나 다른 선수들의 억울한 판정얘기는 쏙 들어가게 생겼다. 감독과 코치진뿐 아니라 잘나신 선수협 윗분들까지 모두 징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잊지말자. 2002년 월드컵 16강에서 우리나라는 포르투갈과 무승부를 거둬도 진출인 상황에서 무승부면 16강에서 멕시코를, 포르투갈을 이기면 이탈리아와 힘든 싸움이 예정되어 있었지만 당당히 승리해서 어려운 길을 스스로 택해서 결국 이겼다는 것.. 그때의 승부를 결정짓는 포르투갈전 박지성의 골은 잊을 수 없는 명장면이다. 이번 런던 올림픽의 저 선수들과 감독에겐 스포츠맨쉽이라곤 발톱의 때만큼도 찾아볼 수 없었다. 영국의 관중들은 11만원씩이나 주면서 그딴 재롱잔치를 보러 온게 아니다. 그들은 한국을 대표해서 간 것이다. 국가의 대표란 무게감이 그렇게나 가벼운게 아니란걸 명심했으면 좋겠다.








2. 진정한 스포츠맨쉽이란... 


남자 유도 81kg 결승전에서는 화끈한 경기내용만큼이나 멋진 장면이 나왔다. 우리나라 김재범 선수가 금메달을 따는 장면도 멋졌지만, 내 눈길을 끈 것은 그보다 김재범에게 패해 은메달에 그쳤지만 울먹거리는 김재범을 따뜻하게 안아주고 다독거려주는 비쇼프의 신사다운 행동이었다. 그야말로 올림픽 정신에 걸맞는 스포츠맨쉽이다. 최선을 다해 승부에 임하고, 패배를 인정하고, 상대에게 축하를 해주는 저 모습이야말로 올림픽의 참모습이 아닐까. 이 둘은 지난 4년전 베이징에서도 결승전에서 붙었었고, 당시엔 비쇼프가 금메달을 가져간 바 있다. 그리고 그 때도 비쇼프는 김재범을 위로하며 오히려 김재범의 손을 들어주기도 했었다. 이는 마치 4년전 60kg급 결승전에서 최민호에게 한판 패했음에도 울고있는 최민호를 일으켜주고 손을 들어주던 루드비히 파이셔의 모습이 오버랩되는 장면이었다. 두 선수 모두 결승전에 올라올 실력만큼이나 훌륭한 스포츠맨쉽을 지닌 훌륭한 선수였다. 그에 반해 여자 63kg급 동메달 결정전에서 본 모습은 이와 정 반대였다. 동메달 결정전에 우리나라 대표팀의 정다운 선수는 세계랭킹 2위, 에만 제브리즈와 연장까지 가는 접전끝에 심판 전원 일치 판정패를 당했다. 그러나 패배를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그 후의 태도가 눈쌀을 찌푸리게 했다. 비쇼프 선수와 같은 매너를 모두에게 강요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예(禮)를 중요시하는 유도 선수로서, 올림픽에 참가하는 대표 선수로서 어느정도의 예의는 갖춰야 되지 않았을까. 정다운 선수는 판정이 내려지고 난 뒤에도 한참동안 매트위에서 인상을 쓴 채 서 있었고, 악수를 내미는 제브리즈의 손까지 뿌리치기까지 했다. 그리고 관중들의 박수에도 인사없이 경기장을 빠져나갔고, 취재인의 인터뷰조차 응하지 않았다. 외국 취재진과 관중들은 정다운의 태도에 당황해했다. 올림픽에 참가한 선수들은 전 세계에 중계된다. 선수들의 이미지는 조국의 이미지에 고스란히 반영되는 것이다. 올림픽 정신과 진정한 스포츠맨쉽에 대해 다시 한번 되돌아봤으면 좋겠다.








3. 끊이지 않는 애국해설.. 이대로 문제없나? - 감정적 해설 vs 객관적 해설의 어디까지 허용되는가?


올림픽 축구 예선, 우리나라와 가봉과의 조별예선 경기였다. 당시 MBC에서 중계를 했었고, 당연히 맥주 한 캔과 함께 경기를 보고 있었다. 그러던 때였다. 경기가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가봉의 선수가 부상을 당했고, 실려 나가게 되었다. 그때 들려오는 코멘트가 "좋아요, 잘 된 일이에요, 잘 됐어요!"를 남발하면서 환호성을 지르는게 아닌가. 우리 명확한 오프사이드였음에도 "깃발을 안 들어도 할 말 없는 상황이에요" 우리 선수가 경기중에 쓰러져도 "대한민국 정신으로 아파도 참고 일어서서 뛰어야 합니다"등과 같은 어이없는 멘트들은 끊이질 않았다. 허정무 해설의 과도한 해설과 추임새는 보는 내내 인상을 찌푸리게 했고, 해설자가 도를 넘어선다면 옆에서 어느정도 중재를 해줘야 될 캐스터는 편파 판정을 들먹이며, 안그래도 이번 올림픽으로 예민해진 '판정'문제를 건드리며 시청자들의 애국심을 건드리는 멘트를 듬뿍 사용했다. 내가 보기엔 김성주 캐스터와 허정무 해설은 그저 술집에서 축구 경기를 보는 동네 아저씨들이랑 뭐가 그리 달랐나 싶었다. 


지나친 애국심에 의지한 해설은 판단력을 흐리게 하고, 괜히 시청자들을 선동하는 행위밖에 되지 않는다. 뭐든지 과하면 좋지 않은 법이다. 적당한 선에서의 애국이야 얼마든지 몰입감을 넣을 수 있다. 다만, 과도한 감정 몰입과 무조건 우리가 옳다는 식의 편파적인 중계는 반감을 일으킬 뿐 아니라, 잘못된 정보로 사실을 훼손시키기 때문이다. 굳이 비교하자면 같은 경기였지만 SBS의 배성재 캐스터와 차범근 해설은 우리 선수들을 복돋아줄건 복돋아주면서, 반성하거나 상대가 잘한 플레이같은 경우는 언급하면서 정확성에 기인한 중계를 하려했고, 듣는 입장에서 충분히 좋은 해설이었다고 공감한다. 우리 선수라고 무조건 편들고, 모든 행동이 용서되고, 우리 선수들에게 반하는 판정은 잘못된 판정이고, 편파적이라고 주장하는게 과연 옳은 걸까. 이건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행동이랑 다를 바 없다. 이는 비단 축구에만 국한되는 얘기는 아니다. 마치 신파극을 찍는듯한 캐스터의 과도한 중계는 반감을 오히려 사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울고 있는 우리 선수를 두고 나만 어찌 자리를 떠날 수 있겠습니까." "아픈 가슴을 다시 찌르는 상대 선수. 우리의 눈물샘을 찌르는 찌르기 공격." 마치 우리 선수들 외에는 모두 적으로 치부하는 듯한 멘트들.. "인류사의 비극입니다."  "세상에 그 악한 것도 우리를 제압할 수 없다." 이런 편협한 애국주의에 호소하는 식의 중계는 너무나 구닥다리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텔레비전 방송사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애국심(감정)에 호소하는 스포츠 중계가 대중적 인기와 홍보에는 가장 쉽고 확실한 카드임에는 분명하다. 적어도 매국노 소리는 듣지 않을테니까. 지나친 편파중계라도 결국은 애국심이라는 포장지에 그럴듯하게 감출 수 있으니까 말이다. 사실 스포츠가 네편, 내 편을 가르는 우리라는 공동체의 연고주의, 국수주의와 같은 경쟁구도에서 발전해왔지만, 올림픽은 그것을 초월한 하나의 제전이 아닌가. 결과에 상관없이 최선을 다하고, 승자를 인정하고 패자를 격려하는 진정한 올림픽 정신이 무엇인가 생각해봐야 할 때다. 요즘의 애국해설은 올림픽의 진정한 본분을 망각한 채, 너무 낡아빠진 국수주의에만 목을 매는 것 같다. 그렇지만 애국해설은 분명 방송국 입장에서 포기할 수 없는 매력적인 카드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 수위의 발언까지가 그 지켜야 될 선이란 것인가. 객관적인 해설은 분명 가장 해설 본분에 입각한 것으로 까일 거리가 가장 적겠지만, 지나친 객관주의와 데이터에 의존한 해설은 또 그 나름대로 지나치게 승부에 연연하는 냉소주의 혹은 딱딱한 해설로 빠질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세상에 뭐든지 완벽한 모델이란 없다. 그래서 '적당히' 중도의 길을 유지하는게 그만큼 어려운거다. 분명한 것은 이번 올림픽 기간에서 방송사에서 보여준 많은 애국 해설은 분명 도를 넘어선 문젯거리였고.. 여기에 대해 다시 한 번 숙고할 필요가 있다.






4. 메달이 전부는 아니다.. 


1번과 2번과도 어쩌면 연관되는 이야긴데.. 뭐 어떤 선수와 국가든간에 메달이 안 중요하겠냐만, 우리나라는 그 메달에 대한 집착과 맹신이 너무 과열된게 아닌가 싶다. 뭐 남자 선수들은 병역문제가 걸려있으니 아무래도 그럴테고.. 지금은 좀 진정되는 분위기긴 하지만, 예전까지만 해도 마치 메달권에 올라가지 않으면 그 노력을 인정해주지 않는 듯한 지나친 성적지상주의가 만연해있었던게 사실이다. 물론 메달은 가장 잘한 사람들에게 주는 일종의 기념패고, 역시 귀하고 영광스러운 업적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게 올림픽의 모든 것이 아니다. 그 결과보다는 대한민국을 대표하여 나간 선수들이 국가대표란 이름으로 흘린 땀방울과 최선을 다하는 모습 그 자체에 의의가 있는 것이다. 후회없이 최선을 다했다면 결과에 상관없이 인정받고 수고와 격려의 박수를 받아야한다. 최근 이러한 분위기가 어느정도 정착되고 있긴 하지만, 아직 선수들이 느끼는 그 부담감은 어마어마한 것 같다. 그 선수들이 모두 즐길 순 없겠지만, 과도한 부담감만은 덜어줬으면 하는게 내 바람이다. 올림픽 선수단은 모두 우리나라를 대표한 자랑스러운 얼굴들이다. 결과는 최선을 다하면 따라올테고, 우리는 그들의 결과만을 맹목적으로 좋아하는게 아니라, 최선을 다해 뛰는 모습을 보고픈거다. 물론 이게 이상주의적인 꿈같은 소리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지향해야 되는 자세임에는 분명하다. 뭐든지 적당한게 역시 중요하니까.


여자 양궁 개인전 64강이었던가. 기보배 선수와 이라크의 여자 대표 선수의 시합이 있었다. 그 시합에서 명불허전의 솜씨로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지만, 그때 탈락한 이라크 여자 대표인 알 마시하다니 선수는 패하고도 어깨춤을 추고 해맑게 웃는 장면이 꽤나 이색적이었는데, 그 이유인 즉슨, 이라크 역사상 최초의 올림픽 여자 양궁 대표로 출전한 선수였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라크와 우리나라에서 갖고있는 양궁의 위상과 중요성, 부담감이란게 차원이 다른 그것이긴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말하고 싶은건 그 여자 선수가 웃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를 말하고 싶다. 결과에 상관없이, 후회가 남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상대를 인정하는 그 모습이야말로 진정 올림픽을 즐기는 진정한 올림픽 정신이 아닐까. 


"한국 선수들은 올림픽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승부에만 집착하는 것 같다."

정다운의 인터뷰 거부 이후, 외국 취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