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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칼럼/전술

밀란은 어떻게 바르셀로나를 막았을까?


UEFA Champions League quarter-final - AC Milan vs FC Barcelona 

밀란과 바르셀로나의 경기는 이번 챔피언스리그 8강 대진표가 공개 되었을 때부터, 가장 관심을 끌던 경기가 아니었을까. 다른 대진에 비해 8강에서 '빅 클럽'끼리 맞붙은 유일한 매치업이기도 했고, 이미 양 팀은 조별 예선에서부터 서로를 상대해 본 경험이 있었으니 더욱 특별한 경기가 되기에 충분했다. 두 팀이 맞붙을 1차전은 산시로에서 하기러 결정이 났는데, 산 시로에서 양 팀은 지난 11월 치열한 경기 끝에 펠레 스코어로 바르셀로나가 승리한 바가 있다. 

그러나 지난 조별 예선과는 경기 전 분위기에 차이가 있었다. 바로 밀란의 스쿼드 상황 때문이었다. 바르셀로나는 최근 리그에서 7연승(챔스까지 9연승)을 달리며, 레알 마드리드와의 승점 10점 차이를 6점차까지 좁히는데 성공하며 기세가 올라가 있었던 반면, 밀란은 리그에서 9경기 무패를 달리고 있지만, 그 과정 속에서 많은 선수들이 부상으로 아웃되며 스쿼드 운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8강전을 앞두고 징계로 결장하는 반 봄멜과 부상으로 아바테와 티아구 실바를 연이어 잃으며 사면초가의 상황에 빠졌다. 그렇기에 산시로에서 열리는 경기라 하더라도 대부분의 팬들이 바르셀로나의 우세를 점쳤고, 8경기 연속 득점을 해오고 있는 메시를 막는게 불가능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결과는? 0 : 0 .. 기대를 모았던 팬들 입장에서는 다소 김 빠지는 점수일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0 : 0의 점수에도 불구하고, 경기 내외적으로 여러가지 화제를 던져주었는데 그 중에서도 화제가 되었던 것은 그 불안한(?) 라인업으로 어떻게 밀란이 바르셀로나의 공세를 막아냈느냐였다. (또 다른 논란거리는 잔디였는데, 이 글에서는 언급하지 않겠다.) 경기가 끝나고 세계최고의 선수인 메시는 밀란의 수비가 굉장했다며 칭찬을 할 정도였으니. 

자, 경기의 전체적인 내용이나 바르셀로나의 전술보다는 밀란의 수비에 포커스를 두고, 그 경기를 한 번 되짚어보도록 하자..
(경기의 전체적인 리뷰는 필자보다 뛰어난 분들이 친절하게 리뷰를 써주실 것이다.. 뭐 조날마킹같은 해외 리뷰도 있겠고..)




선발 라인업 분석 

우선, 경기 내용을 살펴보기 전에 봐야 될 것이 있다. 

바로, 양 팀의 선발 라인업. 선발 라인업과 포메이션만 보더라도 어느 정도는 감독의 의중을 파악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문제시되는 밀란의 라인업을 보기 전에, 원정팀 바르셀로나의 선발과 포메이션부터 살펴보자.



예상대로 아비달의 공백을, 푸욜을 왼쪽 수비수로 메꾸면서 해결하였다. 사실상 지금의 바르셀로나가 낼 수 있는 최고의 수비조합이라 할 수 있다. 다만, 걱정되는 것은 풀백으로 뛰기엔 더이상 예전만한 민첩성을 보여주지 못하는 푸욜이었다. 그리고 케이타의 선발이 의외라면 의외였는데, 사실상 아비달을 제외하면 이번 시즌의 베스트 라인업을 구성할 수 있었던 펩이었기에 세스크 대신 케이타를 택한 펩의 선택은 원정팀으로서 좀 더 조심스럽게 라인업을 구성했음을 알 수 있다. 지난 산시로 원정에서 측면 수비수로 푸욜을 기용했을 때, 밀란의 이브라나 보아텡, 호비뉴같은 공격수들에게 역습을 받았을 시 위험한 상황을 자주 노출했었기에 민첩성이 떨어진 푸욜을 보완해줄 필요성을 아마 펩은 느꼇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원정에서는 알베스가 뛴다는 것이 바르셀로나 입장에서는 큰 힘이었다. 알베스의 선발로 바르셀로나는 센터백들을 좀 더 넓게 포진시켜 쓰리백으로 전환하는 것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이번 경기에서 푸욜은 오버랩을 하지 않고 중앙 수비수들과 라인을 맞추는데 집중했다. 한편 아비달의 공백과 수비적인(상대적으로) 임무를 뛴 케이타의 기용으로 왼쪽 측면 공격은 약화될 수 밖에 없었고, 측면에서의 부담이 커진 이니에스타는 중앙으로 많이 치우쳐 플레이하게 되었다. 



밀란 역시, 지금 상황에서 낼 수 있는 최선의 라인업으로 구성했다. 다만, 아퀼라니냐 시도로프냐의 선택에서 알레그리는 시도로프를 선발로 기용했다. 우선, 챔피언스리그와 같은 큰 무대에 내보내기엔 엘 샤라위는 너무나 어렸고, 막시 로페즈는 바르셀로나의 수비진을 상대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유형의 선수가 아니었기에 결국 부상에서 갓 회복된 호비뉴가 이브라의 파트너로 선택되었다. 지난 경기에서 교체 출전하며 복귀전을 치룬 보아텡이 1에 위치했고, 반 봄멜을 대신하여 암브로시니, 부상에서 갓 회복하여 컨디션이 좋지 않던 엠마누엘손을 대신하여 시도로프가 출전했다. 수비라인은 이번 시즌 두번째로 호흡을 맞추게 된 네스타와 맥세를 중심으로  안토니니가 복귀하여 수비가 불안했던 메스바를 밀어냈고, 아바테 대신 경험많은 보네라가 측면을 책임졌다. 

나머지 선수들은 불가항적인 상황에서 낼 수 밖에 없었다고 치더라도, 아퀼라니가 아닌 시도로프를 선발로 택한 알레그리의 의도는 무엇일까. 우선, 알레그리는 조별예선때부터 챔피언스리그 같은 대회에선 경험많은 시도로프를 기용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 둘째, 포지셔닝에 대한 뛰어난 이해와 그를 바탕으로 한 풀백과의 호흡면에서 경쟁 선수들을 압도한다는 점. 따라서 수비라인을 올리면서 압박점을 하프라인이나 그 위로 올릴 경우가 아니라면 오히려 활동량이 부족하더라도 시도로프가 수비시에 더 큰 기여를 할 수 있다는 점. 셋째, 반 봄멜 대신 나온 암브로시니는 바르셀로나의 전방압박이 들어올 시, 빌드업 과정에서 실수를 할 가능성이 높은데, 이때 암브로시니를 대신하여 빌드업을 전개할 수 있는 패싱력과 키핑에 적절한 선수라는 점. 마지막으로 경기의 템포와 속도를 자기 손에 쥐고 조절하려는 바르셀로나 선수들에게 휘둘리지 않고, 밀란이 제 페이스를 유지할 수 있게 템포를 컨트롤 할 수 있는 선수는 시도로프가 거의 유일하기 때문이다. 결국 시도로프를 선발로 내세운 이상, 밀란은 수비라인을 높이 설정하지 않을거라 예측할 수 있다. 현재 체력과 활동량의 시도로프론 수비라인을 높이 올려서 전방 압박을 하기엔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알레그리는 현재 밀란의 스쿼드에서 낼 수 있는 최선의 카드를 택한것이지만, 여전히 불안 요소는 남아있다. 부상에서 갓 회복한 선수들이 여럿 포진해 있다는 것과 암브로시니와 시도로프의 기동성이 어떻게 버텨줄 수 있을지.. 부상 선수가 많아 벤치층이 얇아진게 문제다. 이 상황에서 알레그리가 준비한 것은 무엇일까?




어떻게 막아낼 것인가


- 전방압박  "뒤에서 볼 돌리지마."

바르셀로나의 선축으로 시작된 경기에서 밀란은 볼을 24초만에 빼앗는데 성공했다. 이브라를 축으로 한 보아텡, 호비뉴의 전방압박과 2선의 간격유지가 효과적이었는데, 이는 밀란이 공세적으로 나올 때 취하는 형태다. 4-3-1-2지만, 4-3-2-1과 같은 형태로 변형되어 이브라를 최전방에 두고 보아텡과 호비뉴가 양 사이드에서 압박을 가하는 방식인데, 전반전까지 이러한 밀란의 전반 압박은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효과를 거두었다. 물론 밀란의 현재 라인업상 이런 강도 높은 압박을 오랫동안 이어나갈 수는 없겠지만, 전반전만큼은 이런 준비 잘 된 압박은 바르셀로나 선수들을 당황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후반전에는 선수들의 체력상 이런 공세를 계속 취하기엔 무리가 있었기에 전방 압박을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아서 볼 수 없었지만, 전반전에는 바르셀로나의 볼을 여러 차례 가로채며 날카로운 역습 상황을 맞이하기도 했었다. 만약 이런 찬스에서 밀란이 득점에 성공했다면, 경기 양상은 달라졌겠지만, 호비뉴의 삽질과 발데스의 선방으로 골까지 이어나가진 못했다.



여러 차례 볼을 뺏어왔던 밀란의 전방압박


한가지 흥미로웠던 것은 보아텡을 활용하는 방식에 대한 알레그리의 변화다. 지난 바르셀로나전과는 달리 보아텡에게 부스케츠를 마크시키는 역할을 부여하지 않았다. 지난 산시로 경기에서, 보아텡은 많은 활동량과 뛰어난 피지컬을 바탕으로 계속해서 부스케츠를 압박했고, 부스케츠의 움직임을 제한시키는데 성공했었다. 그렇지만, 이 날 알레그리는 보아텡에게 그러한 역할보다는 앞선의 공격수들과 전방압박을 하되, 상대가 일정 부분을 넘어오게 되면 미련없이 내려올 것을 지시했다. 여기에 대한 부분은 아래에서 다시 설명하겠지만, 결국 부스케츠는 이 날 밀란의 압박에서 이 전에 비해 더 많은 자유를 얻을 수 있었다.


- 후퇴 "미련없이 내려와라. 어차피 중원은 쟤들꺼"

바로 위에서 밀란의 전방 압박을 얘기하긴 했지만, 이러한 압박은 현재의 밀란에게, 특히 이 날의 선발 라인업으로 할 수 있는 전술적 선택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밀란의 다음 선택은? 미련없는 후퇴다. 홈&원정을 막론하고 풀 스쿼드로 나올 수 있냐 없냐를 차치하더라도 현재의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중원 싸움에서 우위에 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팀이 전 세계에 몇 팀이나 될꺼라 생각하는가. 확실한 것은 현재의 밀란은 아니라는거. 그렇다면 괜히 중원에서 힘 쏟을 필요가 없다. 지난 번에 중원 싸움을 시도했던 것은 반 봄멜이라는 공수 밸런스를 잡아주는데 있어선 둘째가라면 서러울 장인이 있었기 때문이었고, 스쿼드의 체력적인 상황도 지금보다 좋았다. 그렇다면 불확실한 라인업으로 홈이란 이유로 괜히 무리할 필요없이 중원 싸움을 생략한 채 미련없이 내려가자. 이것이 알레그리의 생각이었을 것이다. 


이를 보여주는게 보아텡의 위치다. 보아텡은 지난 경기와는 다르게 특정 선수를 압박하는데 주력하기 보다는 후방까지 내려와, 박스 앞에서 3선의 미드필더들과 마름모꼴의 진영을 유지하면서 공간을 점유했다. 강도 높은 전방 압박을 하다가도, 바르셀로나의 선수들이 하프라인 근처까지 볼을 전진시켰을 때는 계속해서 압박을 하지 않고 그냥 후퇴해서 라인을 정비했다. 호비뉴와 이브라 역시, 동료들의 라인이 내려가면 압박 보다는 전방에서 상대 수비수들의 전진을 막는 그냥 그 정도의 역할에만 머물렀다. 다만, 밀란의 선수들이 모두 제 역할을 한 것은 아니다. 호비뉴는 공격과 수비, 모두 저조한 활약을 보였는데, 공격에서는 역습 상황에서 마스체라노에게 막히면서 제대로 알베스의 뒷 공간을 공략하지 못했고, 수비시에는 위에 그림에서 보이겠지만 이 상황에서 알베스가 저렇게 높이 올라올 수 있었던 것은 호비뉴가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호비뉴는 알베스를 마크하진 않더라도 분명 움직임에 제약을 줬어야 했다. 알베스에게 저런 자유를 준 것이 결과적으로 나쁘게 작용하진 않았지만, 호비뉴는 공수에서 동료들에게 어떤 도움도 주지 못했다.


하프라인까지 바르셀로나 선수들이 볼을 전진시키는데 성공하자, 별다른 압박없이 간격만 유지한채 후퇴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냥 후퇴하는것 아니라, 2선과 3선의 선수들이 촘촘한 간격을 유지하며 계속 수비라인을 맞추려는 움직임이 좋다. 그리고 수비에 성공하면 후방에서 단번에 바르셀로나의 측면으로 볼을 전개시켜주고, 공격수들에게 상대 중앙 수비수들과 경합시키는 장면. 밀란이 이번 경기에서 준비한 전형적인 전술패턴이었다.



A는 이브라의 지난 바르셀로나전 움직임이고, B는 이번 경기에서의 움직임이다. 한 눈에 들어오듯이 이브라는 중앙과 주로 측면에서 움직이면서 최전방 원톱으로서 바르셀로나의 센터백들과 경합했음을 알 수 있다.(호비뉴의 부진으로 그는 측면에서 호비뉴의 역할까지 도맡아 해야했다.) 저번 바르셀로나전 처럼 측면과 중앙을 뛰면서 압박하지 않았다. 왜냐면 밀란의 라인이 그 경기에 비해 내려갔고, 전방 압박이 키워드가 아니었으니까. 그 바로 밑의 호비뉴의 움직임을 보면 알 수 있지만, 그는 정말 이번 경기에서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에게 바라는 것은 알베스의 뒷 공간을 허무는 것이었지만,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


밀란이 미련없이 중원을 포기하고 내려가면서, 바르셀로나의 선수들은 손 쉽게 중앙을 자신의 영토로 만들 수 있었다. (비록 잔디까지 자기 것으로 만들진 못했지만) 부스케츠마저 압박에서 자유로웠기에 하프라인을 넘어 박스 근처까지 전진하는 장면도 자주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케이타는 밀란의 피지컬에 대항해 중원에서 힘을 실을 수 있는 선수였지만, 밀란이 중원싸움을 하지 않으면서 펩의 케이타 기용은 어느 정도 과잉 대응이 되버렸다. 위 활동량에서 알 수 있지만, 오른쪽 공간에 비해 좌측면이 굉장히 비어있음을 알 수 있는데, 이를 공략해야 될 선수는 위치상 이니에스타였다. 그렇지만 이 날 이니에스타는 측면보다는 중앙에서 계속 움직였고, 결과적으로는 테요와 교체당하며 안 좋은 활약을 한 셈이었다. 아, 그 반대편의 산체스도 부진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니에스타는 측면보다는 중앙에서 활약했지만 별다른 영향력을 끼치지 못했고, 보네라와의 경합에서 고전했다.


이니에스타는 측면보다는 중앙에 위치할 때 더 좋은 활약을 보이지만, 이 날은 측면에 위치한 것이 일단 부진했던 첫번째 원인으로 들 수 있을테고, 가장 큰 이유는 아비달의 부재와 케이타를 들 수 있다. 케이타는 중원에 힘(力)을 실어줄 수는 있지만, 측면에서 효과를 보기엔 적절하지 않다. 아비달과 좋은 호흡으로 중앙과 측면을 오가며 힘을 발휘하던 이니에스타가 받는 부담은 클 수 밖에 없었다. 아비달을 대신한 푸욜은 오버랩이 없고, 케이타는 측면에서 제 위치를 찾지 못하는듯 했다. 결국 이니에스타는 측면에서 고립되기 보다는 중앙으로 좁히는 것을 택할 수 밖에 없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실패였다. 이 날 밀란이 선보인 지역 방어 시스템을 상대로 이니에스타의 중앙 지향형 플레이는 무기력했다. 왼쪽의 이니에스타와 마찬가지로, 반대편의 산체스 역시 부진한건 마찬가지였다. 이 날 가장 결정적인 장면중 하나인 1:1 찬스에서 안토니니에게 블락당한걸 제외하더라도 그의 움직임은 굉장히 부자연스러웠다. 이니에스타와 마찬가지로 산체스가 가져가야 될 모습은 좀 더 넓게 측면에서 알베스와 풀어나가야만 됬으나, 평소처럼 중앙 수비수들과 경합하며 포워드처럼 움직인게 좋지 못했다. 좀 더 유연하게 플레이할 필요가 있었으나 산체스에겐 그런 여유가 없어보였다. 아래는 이니에스타와 산체스의 활동반경인데, 왜 산체스와 이니에스타가 페드로, 테요와 같은 와이드한 움직임에 능한 선수들과 교체되었는지 생각하며 살펴보자.


이니에스타와 산체스의 활동반경

공격의 균형이 무너졌다. 바르셀로나는 지나치게 중앙과 우측에 치우쳐져 있었다.


잠깐, 바르셀로나가 지나치게 중앙에 치우쳤다고? 이니에스타가 중앙을 고집? 산체스는 평소처럼 톱에 위치했었지.. 

거기에 중원도 쉽게 차지했다고 했어... 바르셀로나가 이렇게 플레이하는걸 모르는 팀은 없는데, 다들 무너졌었잖아.. 

그런데 어째서 밀란은 막아낸거지? 그 마지막 이유는 바로 철저하게 약속된, 지역 방어(Zonal Marking) 덕분이다.




지역방어 - "박스 안은 절대 못 들어와."


바르셀로나가 박스 앞에 위치한 자리 잡은 수비라인을 뚫기 위해 사용하는 가장 기본적이며서 위협적인 방식은 바로 원터치 패스에 의한 2 : 1 플레이다. 아무리 많은 숫자가 위치하더라도 좁은 공간에서 볼을 자유자재로 컨트롤할 수 있는 선수들과 심지어 드리블까지 가능한 메시는 수적 열세따윈 무시하고 그들만의 패스웍으로 수비라인을 뚫어버리곤 한다. 이들의 현란한 움직임에 정신을 차려보면 어느새 박스 안에는 바르셀로나의 선수들이 위치를 잡고 있고, 결국 메시가 골을 넣어버리는게 일반적인 시나리오다. 이를 타파하기 위해서 알레그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첫째, 박스 안이 아니라 박스 부근에서 라인을 제대로 잡는 것. 둘째, 철저한 간격유지로 박스 부근의 공간을 막아서는 것. 셋째, 2선에 위치한 미드필더들의 대형 유지. 작전명은 "박스 안에 선술를 들여보내지 마라"



이 날 통계치를 보면, 역시나 볼 점유율에서 바르셀로나가 압도하고 있고, 패스 정확도 면에서도 크게 앞서있다. 밀란의 대부분의 공격은 후방에서 전방으로 한 번에 찔러주는 롱패스에 의존했기에 그만큼 패스 성공률이 떨어지는 것이고. 다만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슛팅과 유효슛팅. 양 팀의 슛팅 숫자는 6 대 18로 바르셀로나가 3배만큼의 많은 슛팅을 쏟아부었지만, 유효슛팅 숫자는 결국 3개로 동일했다. 효율성면에서 6개중에 3개를 유효슛팅으로 연결한 밀란이 더 앞서있었고, 바르셀로나는 그만큼 제대로 된 슛팅을 날리지 못했다는 의미가 된다. 


비록 피지컬은 예전만 못하지만, 경기의 흐름을 읽거나 상대의 움직임을 판단하는 능력은 여전히 세계최고 수준인 네스타를 중심으로 포백라인이 굉장히 유연하게 움직였는데, 페널티박스까지 라인을 내리되, 암브로시니를 축으로 하는 미드필더진과의 간격유지를 통해 바르셀로나의 패스통로를 제한시켰다. 마름모꼴로 진형을 구축한 미드필더진은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면서, 수비라인과 겹치는 일을 최소화했다. (2선과 3선이 2중으로 라인을 형성치 못하고 하나의 라인처럼 겹쳐지는 것은 수비하는 입장에서 위험한 장면이다.)



밀란 미드필더진의 활동량. 이 날 가장 좋은 활약을 했던 암브로시니부터, 1에 위치했던 보아텡까지 박스 근처에서 하프라인을 중심으로 움직였음을 알 수 있다. 특히 공격시의 섬세한 작업이나 마무리에선 좋은 점수를 받기 힘들었지만, 노체리노는 보아텡과 함께 밀란의 느린 기동력을 보완해주며 공수 양면으로 많은 움직임을 가져갔었다. 또한 미드필더진은 마름모 진형으로 굉장히 좁게 간격을 유지하면서 암브로시니와 시도로프의 민첩성을 보완할 수 있었다. 서로의 간격을 좁히면, 그것을 커버하는데 더욱 용이해지는 것은 당연한 소리.




밀란 포백의 활동범위. 좌측에 비해 수비부담을 많이 받았던 안토니니는 주로 자기 진영에 머물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네스타와 맥세는 굉장히 넓은 수비범위를 가져갔는데, 이는 펄스 나인(false No.9)을 사용하는 바르셀로나의 공격전술 덕분이다. 메시와 산체스같이 최전방에서 움직이다가 측면으로 빠지거나, 중앙으로 내려오는 선수들을 수비하기 위해선 센터백들이 그들을 마크하기 위해 따라 움직이면서 어느 정도 맨마킹처럼 전환될 수 밖에 없는데, 이럴 경우 그 뒷공간을 공략하는게 바르셀로나의 가장 무서운 점인데, 이를 얼마나 잘 커버하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이를 위해 밀란은 포백을 굉장히 좁게 운용했다. 포백을 굉장히 중앙으로 응집한 다음 서로의 간격을 좁혀 커버하는데 필요한 시간과 거리를 줄여버렸다. 거기다 센터백까지 가능한 보네라였기에 센터백들과의 호흡은 좋을 수 밖에 없었다.



메시의 활동 범위. 역시 중앙에서 주로 볼을 소유하며 움직였는데, 박스 안까지 침투하는데 이 날 어려움을 겪었다. 이 날, 메시가 시도한 슛팅은 6개지만 그 중 2개만이 유효슛팅으로 기록되며 밀란의 수비진과 미드필더진들의 압박 속에서 평소보다 힘든 경기를 펼쳤다. 특히 암브로시니와 자주 맞부딪힐 수 밖에 없었는데, 암브로시니는 민첩성에서 메시에게 상대가 되지 않았지만, 좋은 타이밍의 태클과 흐름을 끊는 반칙으로 매우 잘 견제해주었다.



암브로시니는 이 날, 양 팀을 통틀어 가장 많은 태클과 인터셉트를 기록하며 본인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경기력을 선보였다.


이렇게 간격을 좁힌다고 해도 그게 90분 내내 지속하는 일은 정말 어렵다. 거기다 간격을 좁히게 되면 또 하나의 문제점이 발생하는데, 바로 좌우 측면에 많은 공간을 허용한다는 뜻이 된다. 즉, 밀란은 알베스에게 공간과 자유를 주는 위험을 감수할 수 밖에 없었다. 경기를 보면 밀란은 중앙에 많은 공간을 점유하는 대신, 측면쪽은 거의 무방비 상태로 두었는데, 알베스에겐 어떠한 압박과 마크하는 선수도 붙지 않았다. 이렇게 알베스가 프리로 볼을 잡게 되면, 바르셀로나에겐 절호의 찬스가, 상대 팀에겐 위험한 상황이 보통 연출되지만, 이 날은 그렇지 않았다. 비록 알베스가 프리로 볼을 잡게 되었지만, 피지컬적인 열세에 있는 바르셀로나 선수들이 볼을 받기란 쉽지 않았고, 밀란 선수들이 이미 박스 안에 수적 우위를 바탕으로 공간을 잡고 있었기에 바르셀로나의 공격수들이 박스 안의 좋은 공간으로 침투하기란 어려웠다. 특히 알베스에게 볼이 가면, 안토니니가 재빨리 따라붙고, 좌측에 있던 시도로프가 알베스가 파고 들 수 있는 공간을 미리 막아버리는 협력 수비가 좋았다. 



알베스의 활동범위. 보통 알베스는 원투패스를 통해 박스까지 전진하는데 능하나, 이 날은 박스 근처를 워낙 밀란 선수들이 잘 막아서고 있었고, 측면에 많은 공간이 났기에 대부분의 시간을 측면에서 보낼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공격패턴이 너무나 단조로웠고, 비효율적이었다. 이렇게 단조로운 공격 패턴이 된 것은 아비달의 부재로 좌측면의 밸런스가 무너지면서, 바르셀로나의 공격 자체가 중앙과 우측으로 쏠리는 현상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알베스는 많은 공간을 부여받았지만, 그것을 활용하기란 쉽지 않았다. 알베스를 도와 좀 더 와이드하게 측면에서 밀란을 무너뜨려야 했던 선수는 산체스였으나, 그는 공격이 여의치 않았음에도 계속해서 똑같은 패턴으로 움직이며 알베스를 도와주지 못했다.


- 좋은 조날 마킹의 예.

밀란은 90분 내내 집중력있는 간격유지로, 바르셀로나의 공세를 막아냈다. 박스 근처에서 자리잡은 포백과 1.5선에서 이를 커버해주는 암브로시니. 그리고 그 옆에서 간격을 유지한채 2중 라인을 세우는 미드필더진. 바르셀로나 선수들이 패스를 할 수 있는 공간 자체가 제한적일 수 밖에 없었고, 노련한 밀란 선수들의 컷트로 바르셀로나의 볼은 여러차례 차단당했다.


- 좋은 조날 마킹의 예2.

위에서 언급했듯이, 두개의 수비라인이 하나로 겹치게 되면 이는 공격하는 팀에게 엄청난 기회가 된다. 라인을 하나로 줄여지면, 그만큼 뚫어내기 용이해지고, 직접 슛을 쏘더라도 블락당할 확률이 적어지기 때문. 이 날, 밀란의 포백과 미드필더진은 라인을 계속해서 2개로 유지하기 위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위 상황은 측면에서 볼을 잡은 알베스가 전진하고, 메시가 파고들면서 순간적으로 라인이 겹치게 되었지만, 다시 라인을 재빨리 복구시키는 장면.


바르셀로나 입장에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 왜 중앙에 집착했을까 하는 것이다. 사실 이니에스타를 빼고, 테요를, 산체스를 빼고 페드로를 투입하면서 더욱 직접적인 찬스가 왔었다. 이렇게 밀란처럼 중앙에서 굉장히 좁게 수비라인을 포진시킨 팀을 상대로는 측면에 힘을 줘서 좀 더 와이드하게 플레이하는 것이 최선일테지만, 펩의 교체는 좀 늦은 감이 있었다. 페드로가 비록 이번 시즌엔 부진을 면치 못하곤 있지만 측면에서 상대의 빈 공간을 파고드는 플레이나 압박에 대한 이해도는 산체스보다 더 뛰어나기 때문이다. 테요는 비록 경험면에서 부족하지만, 측면에서 보네라와의 1:1 돌파시도라던지, 넓게 벌려주며 밀란의 포백을 흔들 수 있는 유형의 선수였다. 물론 오늘도 몇 차례 테요에게 좋은 기회가 왔었지만, 너무 단조로운  패턴과 아쉬운 마무리로 바르셀로나의 팬들에겐 아쉬움과 밀란 팬들에겐 고마움을 선사했다.




결과는 ... 암묵적 동의 "2차전은 어차피 우리 홈 - 홈에서 실점만 안하면 돼.. "


알레그리는 이 경기를 역시나 잘 준비해온걸로 증명되었다. 얼마나 이 경기를 위해, 준비했는지 밀란의 선수들이 보여주는 수비력과 조직력을 통해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현재 부상 선수들이 너무 많아 제대로 된 경기 준비(공세적인 경기운영)를 하기 힘들었기에, 비록 원정이지만 주전 선수들이 복귀하게 될 2차전에서 승부를 가리고 싶었던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밀란의 운영과 후반전까지 아무런 전술 변화없이, 현상유지를 하려던 것을 생각하면 무승부를 노렸다기 보다는 홈에서 실점만 안하면 된다는 마인드로 임했던게 아닐까. 

바르셀로나의 입장도 비슷했다. 펩 역시, 산시로에서 많은 실점과 문제점을 노출하던 쓰리백 대신, 포백으로 경기에 임했고, 푸욜을 커버하기 위해 케이타까지 투입하며 굉장히 안정적인 경기 운영을 시도했다. (물론 이건 평소의 바르셀로나 기준;;) 분명히 벤치엔 세스크나 티아고같이 좀 더 변화를 줄 수 있는 선수들이 존재했었지만, 교체카드를 다 쓰지도 않으며 결국 무승부에 만족하는 듯 했다. 이는 홈에서 2차전을 치루는 바르셀로나 입장에선, 패하지 않더라도 누캄프에서 무조건 이길 수 있다는 절대적인 자신감에 근거한게 아닐까. 펩, 역시 주말 빌바오라는 어려운 상대와의 리그 경기가 남아있는 만큼 굳이 오버페이스를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었던것 같다. 결국 두 감독의 이러한 생각은 무승부라는 결과에 암묵적으로 동의했고, 공평하게 합의를 본 셈이 되었다.

챔피언스리그 홈&어웨이 토너먼트에서 가장 예측하기 힘든게 0 : 0 무승부가 아닐까. 홈에서 무승부를 거둔 팀 입장에서는, 원정골을 내주지 않았고 패하지도 않았기에 남은 2차전에서 한 골만 넣어도 유리한 입장을 취할 수 있고, 비기기만 하더라도 진출할 수 있는 긍정적인 요소가 있다. 반대로 원정팀 입장에서는 2차전 홈에서 치루는 만큼 유리하게 경기를 운영할 수 있고, 그냥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골을 넣고 이기면 끝나는 경기다. 개인적으로 누캄프에서의 바르셀로나의 공격력은 어마어마한 수준이기에, 무실점으로 1차전처럼 막을 수 있을거라 보진 않는다. 따라서 분명히 승부는 90분 안에 연장전 없이 갈릴 것이라 보는데, 과연 양 팀의 무승부가 어떤 결과를 나을 수 있을지, 두고 볼 일이다. 또한, 알레그리는 누캄프에서도 이러한 촘촘한 수비라인을 구축할 수 있을 것인가. 밀란의 수비라인에 대항하여 펩은 어떤 공략을 준비해올지, 두 감독의 지략대결도 관심거리다.